누군가 보고싶어죽겠는 마음

by 진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친척 결혼식인데 큰엄마가 날 보고싶어한다며.. 그냥 보고싶다도 아닌 보고싶어죽겠다고 말이다. 그냥 보고싶었다고 했으면 평소처럼 심드렁할텐데 보고싶어죽겠다니..


이제 곧 팔순을 맞이하는 큰엄마가 누군가 보고싶은건 지나온 시절에 대한 보고픔일까?문득 어린시절 아들만 둘인 큰엄마를 도와서 제사 음식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큰엄마를 돕던 내 손길은 큰오빠가 이른결혼으로 맞이한 새언니가 채운다. 새언니 자리가 생긴 후 내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거 같다. 딱 거기까지 기억인거보니 말이다.


분명 내 유년시절에 큰엄마와 기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다. 서울사는 큰엄마의 권유로 지방에서 살던 우리식구가 내가 네 살때쯤인가 큰엄마 옆으로 왔으니 말이다. 일찍 남편을 보내고 혼자 힘으로 두 아들을 키워낸 큰엄마는 진짜 큰사람이다. 그런 큰엄마를 내가 살아생전 몇번이나 볼까싶고 마침 큰엄마가 보고싶어한다니 친척 경조사에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나임에도 슬쩍 마음이 동한다. 일때문에 참석은 못할테지만 그냥 누군가 날 보고싶어죽겠다 하는 게 참 위로가 된다. 오늘 하루종일 내 마음이 원하는 마음같지 않던 마음과 마음의 씨름을 안듯이 말이다.


자식이 생긴 후로는 보고싶은 대상이 생길 뿐 보고싶은 대상이 되지는 못하는거 같다. 그 대상이라 해봐야 내 자식일테인데 자식은 한결같이 나와 붙어 있으니 보고싶을 틈이 있겠나, 그리고 보고싶지 보고싶어죽을정도는 아닐 것이다.


큰엄마는 어떤 시절을 보고싶음일까? 문득 보고싶은 시절이 언제였나 떠올려본다. 마냥 어리기만하고 철이 없던 그 시설로 돌아가 아무런 무게감없이 그저 존재만으로도 가벼운 그 시절이 그립다. 큰엄마가 떠올렸을 내 유년시절이 말이다. 이제는 세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어찌저찌 견뎌내고 있는 모습말고...


큰엄마와 한살 차이인 친정아빠를 보면서 보고 있으면서도 아득한 그리움이 부쩍 떠오른다. 살아갈 일보다 그리워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할까?


언젠가 아빠가 참 보고싶을거 같다. 보고싶어 죽을거 같은 그때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테니 말이다.


보고싶어죽겠는건 삶이 그만큼 다해간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싶어죽지 않을 정도라 다행이다. 보고싶어죽겠는 건 내가 먼저 겪을 일이라는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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