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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큐베리 Nov 16. 2023

오빠의 양심우산

훈훈한 아이

마음 편한 워킹맘으로 하루를 온전히 보내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다.

날씨가 추워져서 따뜻하게 옷 입히는 것만 신경 썼었는데... 오늘은 비가 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느라 날씨를 확인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부터 비가 왔더라면 당연하게 챙겼을 아이들의 우산.

공교롭게도 오전 9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엇? 비가 내리네? 아이들 끝날 시간엔 멈추겠지?’

막연한 기대감으로 비가 멈추기만을 바라며, 출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심지어 운전을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걱정했던 건 단 하나!

‘우리 아이들 우산 없을 텐데... 어쩌면 좋을까?’

사실 학교에는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이 없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양심우산’을 준비해 놓은 곳도 있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약속을 한 양심우산 말이다.     

오늘 같은 날 아이가 양심우산을 썼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오후 1시 셋째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나 어떻게 해?”

일하면서 내 아이에게 듣는 가장 곤란한 한마디를 꼽아 말해보자면 바로 이 말이다.

“엄마! 나 어떻게 해?”

그럴 땐 나도 다시 묻고 싶다.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할까?”

비가 온다고 당장 아이를 데리러 나갈 수도 없고, 비 오는 날 내 아이를 위해 나를 대신하여 학교 앞에서 기다려줄 사람도 없었다.



큰 아이들을 키울 땐 엄마가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그냥 집으로 뛰어가라고 말한 적도 있다.

“oo야. 천천히 조심해서 빠르게 뛰어가봐”

천천히. 조심해서. 빠르게. 뛰라.

지금 생각해도 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던 엄마인 것 같다.

우산을 전달받을 길이 없었던 큰 아이는 빗속을 뛰어가기도 했고, 자신은 비를 맞고 갔지만

동생을 위해 다시 우산을 들고 집 밖으로 나온 적도 있었다.

이럴 때 한꺼번에 몰려오는 미안함과 고마움은 워킹맘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다.

하지만, 오늘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수능이라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큰 아들이 있다.

“oo야.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동생이 우산이 없어. 네가 연락해서 우산을 전해주거나 데리러 다녀올 수 있을까? 엄마 이제 전화받기 곤란하니까 부탁 좀 할게”

아들 대답을 들을 시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우산을 가져다줬을까? 우산 썼으니까 다시 전화 없는 거겠지?’

다시 확인 전화를 하면 보채는 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전화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딸아이가 학원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아이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oo야. 비 와서 어떻게 했어?”

“엄마! 큰 오빠가 학교로 우산 가져다줬어”

“그랬어? 잘했네. 오빠가 학교로 와서 기분 좋았겠네?”

“응~오빠한테 고맙다고 말했어”

큰 아들과 8살 차이가 나는 딸은 오빠가 가져다준 우산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우산이었다며 우산에 얽힌 뒷이야기를 재잘재잘 쉬지 않고 말했다.

내가 우산을 챙겨줬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훈훈한 남매가 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 때문일까?

평소보다 한껏 들뜬 딸아이 목소리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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