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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16. 2023

모임을 정리하고 홀가분해졌다

회피가 아닌 나를 지키는 방법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알고 지낸 아이의 엄마들이 있다. 그 엄마들과 아이들은 하원을 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같이 우르르 놀이터로 몰려가서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주야장천 수다를 떨며 아이들 곁을 지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유모차 바스켓에는 온갖 간식들을 실어서 그 부대에 한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 시간이 참으로 꿀맛 같았다.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동안 아이와 남편 말고는 사람 구경을 한 적이 없으니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아이들 에 관한 이야기와 남편의 흉 보며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해 주는 이런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다. 그런 시간은 유치원까지 이어갔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같이 유치원 놀이터로 모였다. 가끔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식당이나 카페에 모여 맛있는 것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내 눈이 나쁜 것에도 너그러움과 배려심이 넘쳤다.



사람이 많으면 말도 많고 탈도 나는 법이다. 어떠한 이유로 6명이던 인원은 네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께 하는 게 즐거웠고 그만큼 모임도 지속되었다. 그러는 시간 속에서 나는 항상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의 만남은 나에게도 부담되지 않았다. 왜냐면 매일 가던 길이고 동네라 얼마든지 혼자서도 잘 다닐 수 있었으니. 그러나 낯선 장소에서의 모임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식당에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 탓에 의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온 음식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아기자기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나였기에 집어 먹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미션과도 같았다. 아니, 인형 뽑기라고나 할까? 조금만 잘못 집었다가는 놓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다가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긴장감은 더 심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만큼은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물론 너무나 친절했던 엄마들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내 손을 잡아 주긴 하지만 나를 완벽히 케어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 또한 과도한 친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모임이 있는 날에는 얼마나 이쁜 곳에 가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들떠 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어떻게 찾아갈지, 어둡지는 않을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걱정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에는 심한 긴장감으로 두통에 시달렸고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짜증을 낸  같다



그런 모든 것들이 힘들었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실망감을 주고 싶지가 않았다. 되도록이면 모임에 참석을 했고,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너무 어둡게만 보이는 날에만 핑계를 대어 빠지곤 했다. 가끔은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에 내가 밥값을 내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 엄마들은 이따금씩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거나 집 앞의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음료를 사다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 배정이 되면서 모임 또한 조금씩 뜸해졌다. 그 사이에 내 눈도 많이 나빠졌다. 신호등의 불빛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겨우 찾은 불빛은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 조차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매일 가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도로와 인도의 턱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떨어지거나 걸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단톡방의 알림이 두려워졌다. 누군가 조만간 보자고 해맑게 카톡이라도 보내면 내 마음은 한없이 어두워졌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야 했다. 아프지 않은 몸을 아프다고 해야 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아픈 것만 같았다. 가끔은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도 했다. 그래서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그 엄마들은 몇 번이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그마저도 미안해졌다. 날씨도 좋고 예쁜 카페와 맛있는 식당이 널리고 널렸는데 좁디좁은 우리 집에서의 모임은 나 같아도 지겨울  같았으니까.



그러던 중 한 아이의 엄마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모임은 조금 더 뜸해졌다. 출산한 엄마를 제외한 두 명의 엄마가 우리 집에 한두 번 놀러 온 것 말고는 일 년 동안 거의 모이지 않은 것 같다. 년 말쯤 다 같이 모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아기가 어리니까 그 엄마의 집이나 우리 집에서 보면 될 거라 생각을 했다. 사실 그전에 내가 눈이 많이 나빠져서 식당 가는 게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며 내 눈이 그만큼 많이 나빠졌다고 변명 같은 설명을 늘어났었다. 그런 말을 한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해서 그런지 나를 배려해서 한 엄마가 말을 꺼냈다.


은이엄마 : "그럼 별이 언니집에서 볼까요? ^^"


나 : "아.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


아기는 10개월 차였고 아기엄마에겐 차가 있었다. 그래도 아기를 데리고 나온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지 않나. 순간적으로 아기엄마를 배려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 "아. 아니다. 우리 이번에는 00이네 집에서 보자. ^^"


우리 집이 아닌 이상 남의 집이나 식당은  나에게는 모험과 같다. 하지만 가는 길이 모험일지라도 도착한 곳이 집안이라면 머무르는 동안은 마음이 편안하다.. 식당처럼 어둡지 않고 화장실마저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날은 00이네 집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였고 00 이도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백화점 가서 먹으면 좋겠어요. 에어컨도 시원하고 유모차 태우고 있으면 돼서 편하거든요."


역시나 평소처럼 똑 부러지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그런 아기엄마의 성격이 부러웠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놓고는 뒤에 가서 후회하는 그런 성격말이다. 00 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별나서 그렇지 사실은 나 같아도 매일 집에서 아기만 돌보았는데 또 집에 있고 싶겠느냐 말이다. 백화점 식당에 가서 시원하고 깨끗한 곳에서 차려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을 거다. 그렇지만 나의 눈은 그런 것에 이제는 허용을 해주지 않는다. 사실 그날은 내 눈도 원망스럽고 00한테도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었다. 내 사정을 뻔히 알면서 간절한 내 마음을 뒤로하는 것만 같았다.


"아.. 그럼 나는 못 가겠네.. 자신이 없어.. 오늘만큼은 그냥 집에서 보면 좋은데.. 나도 다 같이 보고는 싶지만.. 아휴.. 그냥 핑계나 대고 안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깔끔하지 못한 성격으로 일단은 간다고 말만 했다. 그러는 데는 또 이유가 있었다. 지금 내가 안된다고 하면 저 아기엄마가 자기 때문에 안 온다고 미안해할 것 같았고 그러면 또 억지로 우리 집에 올 것만 같아서 그건 내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냥 가겠다고 해놓고 내일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하면 셋은 무리 없이 즐겁게 볼 것 같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목숨을 걸고 위태롭게 그곳에 갈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안 가려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려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고민 끝에 카톡을 보냈다. 단톡방이 아닌 은이엄마와 원이 엄마에게 말이다.


"내가 오늘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빠진 눈 때문에 자신이 없네. 00 이가 미안해할까 봐 단톡방에는 그런 말을 못 하겠어서 이렇게 따로 말하는 거야. 오늘 셋이 즐겁게 다녀와. ^^"


이렇게 개인톡으로 각각 보냈다. 한편으로는 두 엄마가 00 이에게 잘 설명해 주리라 믿었다.


"아. 언니. ㅠㅠ 아쉽지만 다음에 꼭 봐요. 그래도 단톡방에 못 온다고 한마디 남겨줘요."


원이 엄마 말 데로 단톡방에도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나는 오늘 못 갈 것 같아.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


이번에는 핑계조차 대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보자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에도 또 같은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속상했다. 자괴감도 들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내 마음을 잡아야 했다. 그날 오후 원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나를 더 마음 아프게 했다


"00 이가 기분이 나쁜가 봐요. 언니가 나온다고 해놓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못 나온다고 하고 다음에 보자는 소리도 없으니 이해가 안 된다고요. 언니가 전화 한번 해봐요.


"어 그래. 알겠어. 고마워."


가뜩이나 속상한 마음에 기름을 부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자비로운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로해 주고 쓰다듬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사실 나도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 또한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00아. 오늘 서운했지."


"네. 언니가 온다고 해놓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못 온다고 하고, 다음에 보자는 말도 없고.. 그런 게 좀 그렇더라고요."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아. 사실은 아침에 은이엄마랑 원이엄마한테는 말했는데.. 내 눈이 많이 나빠져서 나가기가 참 힘들다고 그랬어. 너한테 말하면 네가 더 미안해할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또 우리 집에 억지로 오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랬어."


"아니. 그니까요. 언니가 그 두 사람한테만 얘기를 하고 나는 모르고 있고.. 친한 것도 우선순위가 있나 싶네요."


"그건 아니야... 네가 서운했다면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러움이 북받쳤다. 내가 분명 큰 용기를 내어 내 눈이 많이 나빠져서 식당에 가는 게 힘들다고 말을 했에도 나에게 따지는 것만 같아 속상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숨겼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사과하고 이해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오히려 속이 다 시원했다. 응어리가 풀어져 나간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런 틈을 타서 단톡에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전했다. 사실 얼마 전에 시각장애인 등록을 했고 내가 눈이 많이 나빠진 건 사실이라고 구구절절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마치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듯.. 그런데 '과연. 내 잘못이 무엇이었을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오해를 살 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 것? 둘 다 아니다. 내 잘못은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나를 먼저 지켜야 했었다. 상대방을 배려한답시고 이해불능의 행동을 할바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더 강하게 나를 지켰어야 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또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의 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도 시작이 되었다. 며칠 전 단톡방에 모이자는 카톡이 올라왔다. 나는 또 고민했다.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은이엄마와 원이 엄마가 연달아 전화를 주었다.


"언니. 우리 이번에 오랜만에 봐야죠. 조만간 언니 괜찮을 때 봐요. ^^"


"그래. 그러자."


자신 없는 대답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지키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분명 내가 먼저 보자고 말을 하길 기다리는 듯했다.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지만.. 내 눈이 그런 마음까지 받아줄 수가 없는 상태다.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다시 그런 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에 연연하는 내가 그 어떤 곳에서도 마음이 편할리 없다. 그렇다고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해 가며 나갈 용기는 더더욱 없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뺏고 싶지도 않거니와 반복되는 우리 집안에서의 만남은 나조차도 지겹다. 사람이 싫은 건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나는 게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오늘아침 나는 단톡방에 장문의 메시지를 보다.



나 : "다들 잘 지내지? 나는 앞으로 모임에 못 나갈 것 같아. 혹시나 나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나 기다리지 말고 셋이 자주 만나고 그래. 내가 요즘 부쩍 더 눈이 나빠지고 그래서 밖에 나가는 게 쉽지가 않네. 큰 마음먹고 마음 졸이면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많이 힘들거든. 그렇다고 매번 나 때문에 약속 미루고 우리 집에만 와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내 마음 알지? 가끔 우리 동네 지나거나 내 생각날 때 들러주면 그땐 언제든 환영할게. ^^"


원이 엄마 : "언니. 계속 눈이 나빠지나 보네요. ㅜㅜ 언니 보고 싶을 때 언니집에 가야겠네."


00이 : "언니 마음 알지요. 약을 먹거나 해도 안되나 보네요. 마음이 안 좋아요. 언니 안 본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보고 싶어요."


은이엄마 : "언니. 우리한테 부담 안 가지셔도 돼요. 언니도 언제든 우리 보고 싶으면 얘기해요. 우리도 언니 보고 싶을 땐 막 찾아갈 거니까요."


나 : "응. 다들 이해해 줘서 고마워. ^^"



나는 그 어떤 날 보다도 나에게 솔직했다. 그동안 나를 즐겁게도 하고 고민에 빠지게도 했던 모임에서 탈출을 했다. 홀가분하다.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내 눈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수시로 알리지 않아도 된다. 화장실이 가는 것이 두려워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하는 내 모습을 다시 떠올릴 필요도 없단 말이다. 그들이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보면 된다. 모임이라는 틀에서 나만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들도 자유롭고 나도 자유로워졌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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