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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14. 2023

급식소라고요?

네, 맞습니다.

며칠 전, 거의 일 년 만에 오리슬라이스를 구매했다. 요즘 부쩍 고기를 맛있어하는 첫째를 위해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번갈아가며 이것저것 만들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오리슬라이스가 생각이 났다. 생오리면 더 좋겠지만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슬라이스는 이런 햄과 비슷한 풍미가 나는 훈제오리뿐인 것 같다. 일단은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볼에 담은 오리고기에 부어 살짝 목욕을 시켜주었다. 이렇게 하면 해로운 첨가물들이 어느 정도 씻겨 나간다고 한다. 덕분에 미끌거리던 오리고기는 좀 더 담백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직은 조금 비싸다 싶은 부추를 한 줌 씻어두고 양파와 함께 썰어주었다. 오리와 함께 양파를 볶아주고 마지막에 부추와 후추를 넣어서 마무리를 해주었다. 첫째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내 입꼬리마저 쓱 라갔다.


"와. 엄마. 오리야?"


역시.. 입질이 왔다. 녀석이 오리고기를 보고 신이 난 모양이다.


"그래. 오리야 오리. 좋지? 먹고 싶었지?"


"아니, 오늘 학교에서 오리고기에 머스터드소스가 나왔는데.. 아하하. 그래도 좋아. 학교에서 많이는 못 먹었어."


음.. 그래도 다행이다. 학교에서는 고기가 나와도 한두 점 정도만 자기의 몫으로 떨어지니 성에는 차지 않았을 테다. 하마터면 실망할 뻔했다. 예상한 대로 아이가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신난다.



그리고 어제저녁은 카레라이스였다. 열심히 야채와 고기를 볶고 물을 부어 카레가루를 넣어주니 온 집으로 퍼지는 카레향이 아주 그만이었다. 거실에 누워서 뒹굴거리던 둘째가 말다.


"와. 카레냄새 좋다. 엄마."


"그렇지?! 먹고 싶지. 이따가 아빠 오면 맛있게 먹자."


그 뒤, 첫째가 이어서 말했다.


"와. 엄마. 오늘 급식에 카레고등어구이 나왔어. 하하하."


"아. 그래? 아하하. 그랬구나. 신기하네. 어쩜.. 아하하하하하."



늘 이런 식이다. 얼마 전에 큰 마음먹고 등갈비 김치찜을 한 날에 남편이 점심에 김치찌개를 먹었었고, 부대찌개를 준비한 날에는 아이들 급식에 부대찌개가 나왔었다. 이쯤 되면 미리 급식 식단표를 볼만도 하지만 나도 그런 것까지 신경 써서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는 노력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뭐 가끔 똑같은 거 두 번 먹는다고 어찌 되는 건 아니니까.



어떤 날 된장국을 끓이거나 시금칫국, 어묵볶음, 감자조림, 두부무침 등등 내가 하는 요리마다 남편은 급식소 맛이 난다고 한다. 이것은 칭찬일까? 욕일까? 뭔가 부족한 맛이란 뜻이겠지만 나는 그냥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급식소에는 알다시피 조리사뿐 아니라 영양사선생님이 존재한다. 각종 영양분과 식재료의 조합을 추어 한 끼의 식사가 된다. 나도 그런 거다. 가족을 위해 만들다 보니 맛도 골고루 주고 싶고 영양도 골고루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한때는 지독하게 건강을 챙긴 적도 있었다. 유튜브로 공부까지 해가며 가족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감행했었다. 비타민이나 각종 영양소의 종류는 물론이고 그 효능과 부작용까지 달달 외우고 설탕과 밀가루는 우리 집에서 금지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밖이나 집에서 외식 한번 하는 날에는 그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심지어 그런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졌고, 그럴수록 내 집밥은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어느 정도의 타협지점에서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가 중요하다.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어 진다. 그냥 먹고 싶을 땐 먹고 심하다 싶으면 줄이는 게 맞다. 이론은 알고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조금만 신경 쓰는 게 맞다. 그러다 보니 식소 맛이 났나 보다. 요즘엔 학교마다 식이 그렇게 잘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내 밥도 잘 나오는 거라 생각야겠다.



국이 되어버린 감바스

오늘 저녁은 감바스다. 어젯밤 첫째가 누워서 오동통한 배를 드러내고선 지난번에 엄마가 해준 감바스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가뜩이나 요리를 좋아하는 나인데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니 늦은 밤 잠을 미뤄두고 쿠팡을 뒤져서 온갖 재료를 주문했다. 열정이 너무 불타오르는  날에는 항상 뒤끝이 좋지는 않다. 올리브오일이 어느 정도 들어갔음에도 그게 잘 가늠이 안되었는지 다 만들고 보니 감바스국이 되어버렸다. 하하. 그래도 맛은 좋았다. 올리브오일이 너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소스라기 보단 국에 가까웠고 그 덕에 끝맛이 좀 쓰다는 거 빼고는 말이다. 에헴. 당분간 감바스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약간은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었다. 내가 만든 생각 속에서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고집이 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믿고 그렇게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고 가두기 일쑤였다. 요리도 그랬다. 설탕과 조미료는 당연히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에 맛이 있던 없던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건강하면 좋지만 그건 내가 만든 기준이었고, 이제는 설탕이나 조미료 조금 넣더라도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우선이라 생각이 든다.



살다 보니 인생은 내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노력한 만큼 그 대가가 나에게 주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 기준이란 걸 세우는 순간부터는 그것에 맞추느라 나 자신과 주변을 놓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불행의 길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다. 조금은 느슨해질 필요도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물론 너무 허슬 하긴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싶다.



나는 또 고민한다. 내일은 어떤 식재료로 어떤 급식소의 맛을 내볼까 하는 고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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