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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14. 2023

스며드는 시간들

올해로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둘째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다. 내가 키가 작아서인지 키가 큰 건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성조숙증이 살짝 걱정이 되었다. 엄마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성조숙증 검사는 10살 생일 전에 해야 그 치료비가 보험이 적용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부랴부랴 예약을 했다.  겨울 방학에 맞춰서 검사를 해주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예약이 밀려서 3개월 만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오늘처럼 병원일을 봐야 하는 날에는 남편의 연차가 필요하다. 평일이라 아이 역시 가정학습으로 출석을 대신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에 도착을 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역시나 남편은 나의 존재를 까먹고 혼자 걸어가려다 아차 싶었는지 내 팔을 잡았다. 나의 왼쪽에는 남편이, 오른쪽에는 둘째가 함께 걸었다.



우리 아이들은 밖에서 항상 내 팔을 서로 잡으려고 한다. 벌써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데도 내 팔을 잡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엄마인 내가 장애인이라서 걱정이 되는 마음도 있겠지만, 엄마와 함께 나간 공간에서 엄마의 팔을 잡지 않으면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것처럼 많이 불안한 모양이다. 사실 그럴만한 게..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렇게 키웠다. 내 눈이 잘 보이지 않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옆에서 따로 걷다가 혹시나 다칠까 봐 염려되는 마음에 항상 내 손을 잡게 했었다. 잠시라도 손을 뗄라치면 격하게 아이를 부르며 손을 잡게 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불안감부터 배운 것 같다. 그만큼 조심성이 커진 것도 있겠지만 자유롭게 뭐든 탐색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니었는지 살짝 후회도 된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여전히 그럴 것 같다. 아이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병원 안으로 들어서니 한산하던 바깥풍경과는 다르게 아픈 사람이 참 많았다. 물론 우리처럼 간단한 검사정도만 하려고 온 사람들도 있을 테다. 우리가 오늘 가야 할 소아 청소년과는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려면 건물 가운데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했다. 역시나 둘째가 불안해했다.


"아.. 나 이거 안 타고 싶."


""괜찮아. 아빠 손 잡고 올라와.


이런 모습은 첫째도 마찬가지다. 두 아이 모두 에스컬레이터를 탈 일이 생기면 겁부터 먹는다. 그 와중에 뒤에 서 있는 내 발을 보며 ,


"엄마. 발.. 발을 좀 안으로 넣어. 노란 선에 닿으면 안 돼. 왼쪽으로 조금만 ..!"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이 스스로도 자기의 불안함을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내 발이 혹시라도 끼이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너무 주는 것 같다. 나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세심하게 챙겨줘야 하지만 그런 엄마가 아니란 걸 알아서인지.. 조금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한다.


"엄마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오늘도 둘째가 그랬다. 자기도 불안해서 겁이 났음에도 내릴 때는 뒤돌아서 나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폴짝!"


혹시라도 엄마가 내리는 타이밍을 놓쳐서 발이 끼일까 봐 걱정이 되는 거다.


"응. 고마워. 하하. 귀여워. 우리 딸."


사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엄마가 따라다니며 아이를 챙기는 모습이 보통이다. 예전에 첫째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간 적이 있었다. 첫째는 앞에 앉아 미용실 원장님께 맡겨져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고 둘째와 나는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필 둘째가 목이 마르다고 했는데 정수기의 버튼과 종이컵을 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쁜 원장님께 찾아달라고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결국 목이 마른 아이에게 참으란 말밖에 하지 못했다. 참 많이 부족한 엄마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더 열심히 물을 챙겨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찾아주지 못할 거면 가지고 다니면 되니까.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천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따라가다가 혹시나 다치기라도 할까 봐 끊임없이 눈으로 아이를 지켜준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의 손을 잡아야 했고 귀를 쫑긋 세워 아이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온몸의 감각을 일으켜 세워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손을 놓치거나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불안해했다. 특히나 차가 오는 소리가 나면 아이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아이가 뿌리치려 해도 화를 내면서라도 놓지 못하게 했었다



그래서일까? 첫째가 어릴 때 함께 인도에서 손을 잡고 안전한 상태로 걷고 있음에도 옆의 도로로 지나가는 차를 볼 때면 비명을 지르며 내 몸에 매달리곤 했었다. 나의 불안함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다. 엄마가 불안해하니 아이도 함께 불안했을 것이다. 자신이 위험할 때 지켜줄 사람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다 보니 그것 또한 불안했을 테다. 결국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자기 스스로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배운 건 아닐까.



아직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고 더불어 엄마까지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버겁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 가는 공간이나 에스컬레이터처럼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곳에서는 그곳을 피하고 싶고 엄마손을 잡아야만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 아이들을 겁쟁이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엄마인 나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에게 스며든 것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첫째야, 둘째야, 여전히 겁이 나고 불안하겠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고 슬기롭게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있는 너희들에게 엄마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단다. 언제나 지금처럼 자신을 지킬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의 힘듦을 돌아볼 줄 아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부족한 엄마밑에서 잘 자라주고 있어정말 고마워."



2023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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