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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12. 2023

함께 발을 맞춘다는 것

브런치를 기웃거리다가 초등학생들의 학년에 따라 좋아할 만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아차 싶었다. 그 책들 중에는 내가 사주고 구해준 책은 한 권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추천도서를 중심으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검색을 하고 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이미 예전부터 사주고 읽히고 있던 책들이 아닌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구나.'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것 같아서 여러 가지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금액이 상당했다. 가뜩이나 요즘 식재료 구입에 많은 지출이 있어서 살짝 고민도 되었다. 아니, 사실은 합계금액을 보자마자 멘붕이 왔다. 결국 당근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사실 우리 집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도 거의 다 알라딘이나 당근에서 중고로 구매한 것들이다. 가끔 내가 홀리다시피 해서 새책을 사주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다. 정보가 빠르고 똑 부러지는 엄마들은 공동구매를 이용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야무지게 잘도 사던데 나는 그렇지도 못하다. 결국 나같이 돈도 없고 정보도 없는 말뿐인 엄마는 당근으로 배를 채워야 하나 보다.



당근에 검색을 해보니 마침 내가 원하던 책이 떡하니 있었다. 지어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물론 내가 혼자서 거길 찾아갈 생각은 없었고, 주말이라 남편이 있으니 남편만 믿고 당장 구매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남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분명 일기예보에는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막상 나와보니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조금은 덥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오늘은 격일로 잘 보이지 않는 날이다.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눈부심은 더 심했고 온 세상이 뿌옇고 어둡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든든한 남편이 있지 않은가. 그의 오른쪽 팔에 매달려 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 너무 오랜만에 함께 걸은 건가? 남편의 발걸음이 제법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엇. 오늘 좀 빠르네?"


소심하게 한마디 던지고 여전히 빠른 걸음을 따라서 열심히 걸었다. 불안했다. 그 불안함은 멀리 가지 못했다. 보통 아파트 안의 인도는 도로나 주차장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다. 나도 그걸 알기에 인도 근처에 오면 자연스럽게 남편의 발에 맞춰서 발을 올려주는데 오늘은 잘 보이지 않는 날이다. 인도와 도로가 구분이 잘 되지도 않았고 처음 가본 곳이라 예측을 할 수도 없다. 결국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 한 발짝을 잘 못 디뎌서 발을 접질리고 말았다. 다행히 남편의 팔에 매달려 있던 터라 극적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나도 놀라고 남편도 놀랐다.


"아이고. 생각 없이 그냥 내려가나."


남편의 말이 순식간에 내 머리를 지나 심장으로 꽂혀버렸다. 물론 남편도 너무 놀란마음에 툭하고 튀어나온 말이겠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아니, 내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내려가면 내려간다고 얘길 해줘야지."


"아니 올라갔으면 내려가야지."


"아니요. 어디서 내려가는지 알려줘야 내려가지. 나는 뭐 계속 내려가고 있을까? 하하. 참내."


"아.. 미안미안.."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자주 걷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엄마와 만나도 이런 일은 종종 생긴다. 주로 턱을 알려주지 않았거나 너무 빨리 걸었을 때, 내가 발을 접질리거나 턱에 툭~하고 걸리면 그제야 "아 맞다. 엄마가 또 깜빡했다." 하고 깜짝 놀라시곤 한다.



사실 내가 미리미리 안내를 요구해야 한다. 남편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나를 다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막상 함께 걸어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내가 먼저 안내해 달라고 하나하나 설명을 해줘야 하지만 나 역시도 그러질 못한다. 그 안에는 꽁꽁 숨겨둔 쓸모도 없는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내 눈이 그렇게나 나쁘다는 걸 들키기 싫은 것 같다.



"있잖아. 사실 네가 팔을 잡아주는 건 내 마음이 불안해. 내가 너의 팔꿈치 좀 잡을게. 그리고 나는 반발짝 정도 뒤에서 걷는 게 마음 편해. 인도나 턱이 있을 땐 이야기부터 해주고 먼저 살짝 내려가면 내가 바로 따라서 내려갈 수 있어. 횡단보도나 길에서 갑자기 멈춰야 할 일이 생기면 그 상황을 설명해 주면 좋겠어. 뒤돌아 설 때는 나를 질질 끌고 다니지 말고 나를 바라본 채로 뒤를 돌면 내가 힘들게 빙빙 돌지 않아도 되거든.."



이런 말들을 해줘야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나와 걷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과 엄마처럼 가족이라면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겠지만.. 만약 타인과의 관계라면 나는 이런 말 대신 만남을 피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도움받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에겐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매번 계속되는 도움은 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상대방이 귀찮을까 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나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화도 난다. 이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집안에 머무르고 밖을 잘 나가지 못하나 보다.


"여보. 우리 자주 좀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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