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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25. 2023

동네 한 바퀴

벚꽃구경

우리 동네에는 요일장이 열린다. 주 수요일과 토요일이 되면 우리 집 건너 아파트 단지 사이에 기다랗게 도르를 따라 인도 위에 장이 열린다. 지금이야 남편 없이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곳이지만 신혼 초에만 해도 나 혼자서도 시장에 나가서 장을 보곤 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시장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 "얘들아. 우리 오늘 오랜만에 시장이나 한번 가볼까?


첫째 : "아.. 나 나가기 싫은데.."


나 : "에이.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오랜만에 좀 걷자. 소품샵도 새로 생겼다는데 거기도 한번 가보자."


둘째 : "어. 나 갈래."


첫째 : "소품샵? 안 갈래.. 귀찮아. 나는 집에 있을래."


나 : "그래? 그럼 너는 새로 생긴 소품샵에 안 간다는 거지? 샤프하나 사주랬더니.."


첫째 : "샤프? 그럼 갈래. 당연히 가야지."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첫째가 벌떡 일어났다. 첫째는 요즘 들어 나가는 걸 무척 귀찮아한다. 그나마 샤프나 노트 하나 사준다고 하면 겨우 따라 나오지만 막상 나오면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는 것도 첫째다.



오늘 꼭 시장에 가려고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리 가지 않고서도 벚꽃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열리는 그 아파트 단지의 도로에는 벚꽃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벚꽃이 만발을 한다. 그 예쁘고 화사한 벚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이번주가 지나면 벚꽃은 금세 다 떨어지고 말 테니까.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섰다. 어제부터 흐렸던 날씨 탓에 조금은 서늘한 느낌은 들었지만 확실히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 : "와. 좋다. 너도 막상 나오니까 좋지?"


첫째 : "응."



이제부터 우리는 줄줄이 비엔나가 된다. 나는 남편의 팔을 잡고 둘째는 아빠의 손을 잡고, 첫째는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좁은 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걷다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것이 분명다.


남편 : "얘들아. 앞으로 좀 가. 너희들끼리 좀 걸어라."


나 : "그래. 이렇게 걸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수도 있어. 엄마랑 아빠가 뒤에서 걸을 테니 앞으로 좀 가서 걸어."



아무리 말을 해도 아이들은 내 앞에 나란히 걷는다. 내 발에 밟히고 걸리고 난리가 나지만 좀처럼 떨어지지를 않는다. 특히나 좁은 시장에서는 이렇게 걸으면 안 되는데.. 아이들은 어떻게든 내 옆에 붙어있으려 한다.


나 : "엄마랑 아빠가 어디 도망가는 거 아니니까.. 앞으로 쭈욱 걸어가면 돼. 아니면 차라리 엄마 뒤에서 따라올래?"



분리불안이 이런 거겠지? 아직은 어리다 보니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엄마와 떨어져 걷는 게 불안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손만 잡고 시장길을 걷기에는 내 눈이 많이 나빠졌다. 시장 바닥에 있는 물건을 발로 차거나 진열되어 있는 야채들을 팔로 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걸을 수는 없었다. 남편의 팔을 꼭 잡고 걸어야 했다. 벚꽃은 예상대로 활짝 펴 있었다.


남편 : "와. 벚꽃이 활짝 피었네. 여보가 안 보여서 어째.."


나 : "응. 괜찮아. 얘들아 꽃 이쁘지? 활짝 폈어?"


첫째 : "응. 이뻐. 엄청 활짝 피었어."


나 : "그래. 밤에 보면 더 이쁠 텐데.. 많이 봐둬. 지금 지나면 내년까지 또 기다려야 하니까."



벚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까만 편이다. 그래서 회색빛 도로에 까만 나무는 내 눈에도 잘 보였다. 하지만 그 위에 피어있는 벚꽃은 하늘과 구분이 되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상상했다. 예전에 보았던 솜사탕처럼 풍성했던 벚나무의 꽃뭉치를 떠올리며 지금 이 나무 위에는 그런 솜사탕뭉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예쁠 터였다. 그런 상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소품샵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는 날이 휴무날이 될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남편 : "에이. 오늘 문 닫았네."


나 : "아. 진짜? 하필이면 왜 오늘 문을 닫아가지고.. 아.. 너무 아쉽다."



하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첫째 : "아.. 나는 시장에 오기 싫었는데.. 시장에 오려고 온 게 아닌데.."


나 : "그렇지. 하필이면 오늘 문을 닫아가지고.. 엄마도 서운하네. 아쉽고.. 일단 시장에 왔으니까 구경 좀 하고 근처에 있는 문구점에라도 가자. 거기 가서 샤프하나 사줄게."



줄줄이 비엔나는 렇게 민폐를 끼쳐가며 시장을 활보했다. 그 와중에 쑥과 즉석어묵, 뻥튀기까지 낚아채고는 근처 상가에 있는 31가지의 맛의 아이스크림집에 들렀다.



가게에 도착을 한 뒤, 남편은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키스크로 가서 능숙하게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키스크야말로 나에겐 넘을 수 없는 벽과 같다. 아이스크림집이나 햄버거집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김밥집과 국숫집에도 키스크를 설치해 둔 곳이 많다. 물론 이젠 나 혼자 그런 식당이나 가게에 갈 일은 없지만, 혼자 다닐 수 있는 저시력자나 어르신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존재일 것 같다. 이왕이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음성으로 주문을 한다던가, 그것이 어렵다면 읽어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은 참 꿀맛 같았다.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입속에 퍼지니 봄이 정말 내 몸으로 들어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와플의 바삭함이 먹고 싶어서 콘을 주문한 게 화근인 건지 아이스크림이 자꾸만 입과 손에 묻었다. 남편은 그런 내 손과 입을 닦아주며 말했다.


남편 : "이건 뭐.. 애를 셋 키우는 것도 아니고. 하하. 참내."


나 : "헤헤. 빨리 먹고 문구점에나 가자.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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