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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29. 2023

기다려지는 시간

오늘은 어떤 일이?

키가 큰 남자연예인이었다. 얼굴도 꽤나 잘생기고 목소리도 부드러운 사람이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어디론가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는 중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키가 작은 나를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의 표정도 옷차림도 잘 모르겠다. 행선지가 어디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마주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고, 키가 큰 그를  올려다보며 행복함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가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숨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다른 한 여자가 함께 서 있었다



꿈이었다. 요즘 들어서 꿈을 또 많이 꾸고 있다. 딱히 그 연예인을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가 내 남편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 '내 남편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요!'



꿈에서 는 동시에 나는 알았다. 몸부림을 치던 아들이 내 머리곡대기에서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자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왼쪽 팔에 찰싹 붙은 딸 때문에 나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던 사실을 말이다. 그 아름다운 꿈은 아들과 딸의 몸부림 끝에 탄생한 작품이었다.



칠 전에는 이틀 연속으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었다. 길몽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까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 확실한 것은 자다 깼을 때 등이 뜨거울 만큼 방바닥이 따뜻했다는 것이다. 음.. 그러니 이런 꿈들은 그저 자는 동안의 신체의 반응일 뿐이지 예지몽이라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런 꿈을 제외하고 가끔씩 뜬금없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대로 예지몽이라 여기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아이들의 태몽을 내가 다 꿔주었고 심지어 다른 부부의 태몽까지도 주었으니까. 특히나 눈이 나빠지면서 꾸는 꿈은 거의 다 흑백이거나 흐린 반면에 내가 예지몽이라 여기는 꿈들은 한결같이 또렷하고 선명한 색깔을 보여주었다. 이쯤 되니 언젠가는 나도 삼신할머니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라 하면 귀여운 추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 때였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낮잠을 자곤 했는데 그날은 분명 내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약간 졸리긴 했지만 너무 신기한 뉴스라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와. 나중에 오빠 오면 꼭 알려줘야겠다.' 하며 오빠를 기다렸다. 얼마 후, 해가 질 때쯤 오빠가 집에 들어왔다.


"오빠! 빅뉴스야. 내가 아까 뉴스를 봤는데 1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순간이동이 가능해졌대! 신기하지?"


"에이. 설마.."


"아니 진짜야. 내가 뉴스 봤다니까! 사과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하더라니까. 대신 1미터 거리만 가능하대. 진짜야!"


"아하하. 거짓말 마라."



오빠는 약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답답한 마음에 "치.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셔."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가 급하게 나를 찾았다.


"야. 너 때문에 학교에서 애들한테 뒤지게 맞았잖아."



그렇다. 그건 그저 내 꿈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른 채 오빠에게 전달을 했고 믿지 않던 오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뒤로 오빠는 신용을 잃었다.



물론 요즘엔 저런 말도 안 되는 꿈은 잘 꾸지 않는다.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나 가능한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모든 꿈들이 근심과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가끔은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을 만큼 슬프고 무서운 꿈을 꿀 때도 있고 눈앞이 캄캄해서 길을 헤매며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슬프고 우울해도 그 꿈은 그저 꿈일 뿐, 깨고 나면 잠시 여운은 남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실제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떤 날은 온 세상이 밝고 선명해서 나 혼자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자유롭게 걷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물론 이것 또한 꿈일 뿐 현실은 아니다. 결국은 꿈은 꿈일 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의 1/4의 시간 동안 내가 꾸는 꿈으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꿈을 꾸는 것도 내 삶의 한 부분으 여기며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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