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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pr 01. 2023

눈감고 책 읽기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

평일 아침 7시. 알람이 울렸다. 암막커튼에 가려진 방안은 캄캄하기만 했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들어서니 어지러웠던 게 확실해졌다. 술에 취한 것처럼 세면대가 움직이고 내 몸도 둥둥 떠 다니는 것 같았다. 덩달아 속도 메스꺼웠다. 다시 방으로 가서 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어젯밤은 남편의 당직날이라 그가 집에 없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해서 어떻게든 내가 아침을 챙겨줘야 다. 최대한 간단한 걸로 챙겨주고 얼른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오늘은 그냥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고 갈래?"


"아니.. 빵 먹을래."


"알겠어."


아깝다. 빵을 준다고 했으면 시리얼 달라고 했을 텐데.. 괜히 먼저 시리얼이라고 했나 보다


"엄마. 나는 프렌치토스트."


"엄마. 나는 그냥 구워줘. 딸기잼이랑 먹을래."


아주 그냥 쉬운 게 없다. 개성까지 뚜렷한 녀석들이다. 단 한 번도 같은 메뉴를 던져준 적이 없다. 덕분에 흔들리는 싱크대를 부여잡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식빵과 계란을 낚아채가며 겨우겨우 미션을 수행했다. '나도 참.. 엄마는 엄마였구나.'싶었다



오랜만에 메니에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이명이라는 놈을 달고 오지 않았으니 견딜만하다. 아니 비염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비염 때문에 어지러울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네이버를 맹신하니까. 그냥 그럴 것 같았다.



그 덕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부터 하루종일 누워서 지냈다. 읽어주는 책을 듣고 브런치의 글을 읽기도 했다. 이럴 땐 시각장애인이라 더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눈을 감고도 책을 다 들을 수 있으까 말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자기 계발서와 육아서이다. 아무리 읽어도 계발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다. 특히나 육아서는 주기적으로 읽어줘야 한다. 분명 꼼꼼히 읽었고 다 알 것 같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더군다나 그 효력이 일주일 이상은 지속되지 않더라는 점이다. 물론 이건 나만 그럴 수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읽어줘야 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좋다. 어차피 일주일 뒤면 다 까먹어버릴 테니까. 읽고 반성하고 고치고.. 까먹고.. 화내고.. 다시 읽고.. 반성하고 계속되는 반복이지만 적어도 한 달의 반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안 환경도 그랬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내가 읽을만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내주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빌려오곤 했는데 그걸 다 읽고 쓰기까지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니 책이 읽고 싶어졌다. 서점에서 책을 사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만, 눈의 초점을 맞춰가며 봐야 했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다 읽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잘 안 보이는 글자를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그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다 보니 책의 내용 또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책은 다시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만약에 지금도 눈으로만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평생 책 한 권도 읽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눈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덕에 나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모든 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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