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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pr 04. 2023

나를 위한 포기와 인정

병원에서 처음으로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렇다고 뇌가 없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사실 망막이 어디에 붙어있는 것인 줄도 몰랐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인지 잘 와지 않았을 뿐이었다. 담담한 데는 내 성격도 한몫을 했다. 워낙 속에 있는 마음을 꺼낼 줄 모르던 성격이었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컸겠지만 슬퍼도 슬프지 않아야 했고 기뻐도 너무 기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 해도 뜨겁게 차오르는 눈물만큼은 숨길수가 없었다. 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평소에도 내 눈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은 했다. 안경만 스면 잘 보이는 사람들과는 달리 안경을 쓰나 안 쓰나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0.5의 시력을 0.6 정도로 높여주는 게 전부였니까. 그러나 큰 병원에 가면 방법이 있을 줄 알았다. 검사를 안 받아봐서 그렇지 정밀검사를 받아보면 나에게 딱 맞는 수술이나 약물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면  언제든지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교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내가 전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내 망막의 세포는 하나둘 죽고 수년에 걸쳐서 결국에는 실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는 없고 앞으로 조금씩 더 안 좋아져서 결국에는 세상의 빛조차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내 안구를 꺼내서 죽어가는 망막에 연고라도 바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치료법이 없다는 말이 가슴에 꽂히고 '실명'이 나를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런데 나는 '실명'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 지금 내가 볼 수 있고 앞으로도 이 정도는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실명'은 그냥 '죽음'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 시기가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움에 빠져 매일매일을 좌절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실명도 그런 것 같았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꺼내보면 볼수록 피하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다. 바닷속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혀두고 절대 떠오르지 말길 바랄 뿐이었다.



내 눈물은 그런 것이었다. 지금의 불편함을 고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와도 울고불고 떼를 써도 절대 바뀔 수 없는 정답을 인정하는 마음의 잔해물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왜 내 망막은 그렇게 되었을까?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생겨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 나는 평범하지 않은 나의 망막을 보았다.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정상의 망막과는 달리 내 것은 울퉁불퉁하고 거뭇거뭇한 분화구 같은 게 여러 개 솟아 있고 어떤 것은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화성 같았다. 저 분화구들이 결국엔 내 망막을 온통 뒤덮고 말겠지? 망막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다. 더 이상의 교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치료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진행을 늦추는 방법 또한 없다. 심지어 그 끝은 실명이라고 했으니까 더 이상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5년 전이었다. 장애진단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다시 만난 내 망막은 꽤나 많이 망가진 듯했다. 교수님은 가운데에 바늘구멍만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진행된 상태라고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그런 교수님 앞에서 나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슬프거나 괴롭지가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예상을 했었고 그동안의 내 시야가 많이 좁아지고 불편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남은 부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어찌 보면 그동안의 나는 좁아지는 시야만큼 내 마음도 함께 좁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씨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길을 걷는 게 힘들고 무서워서 손톱을 뜯으며 한숨짓는 날들이 많아졌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이었고 쓸모도 없는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동안 그 작은 바늘구멍사이로만 세상을 바라보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보는 것보다 크고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 그 뒤에 숨겨진 아픔, 그리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살면서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만 하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고 떼어낼 수도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내 마음하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인정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뒤돌아보며 눈물짓지 않고 나를 위해 포기할 줄 아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속에서 보이는 넓은 세상을 느끼는 것. 때때로 괜찮지 않은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인정해주려 한다


그게 내 삶이고 나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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