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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pr 06. 2023

두 번째 흉터

"자. 마취주사 들어갑니다. 조금 따가울 거예요."


"윽.."


누워있는 내 얼굴에 두꺼운 천이 덮였다. 그 두꺼운 천에는 왼쪽눈에만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눈부신 불빛이 세어 들어왔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머리맡에 앉은 의사가 구멍사이로 보이는 내 눈두덩이에 주삿바늘을 찔렀다. 그러고는 곧바로 실을 넣고 잡아당기고 묶어주고 또 실을 넣어 잡아당기고 묶어주고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노련한 의사의 바느질솜씨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쌍꺼풀수술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박자라도 맞추듯 한 땀 한 땀 꿰매어질 때마다 간호사는 내 눈두덩이을 축축한 무언가로 닦아주었다.



어제오후, 내 왼쪽 눈커플이 찢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휴대폰에 글을 쓰기 위해 바닥에 놓아두었던 키보드를 주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눈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 와중에도 눈동자를 피한 게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너무 아픈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으악! 누가 서랍을 열어둔 거야. 아우. 아파겠네."


누군가 열어둔 서랍장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다가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아팠다. 눈물이 절로 솟구쳤다.


"엄마. 피나. 피!"


순간 이 눈물이 피눈물인가 싶었다. 혹시나 해서 손으로 눈물을 닦아보니 역시나 그냥 눈물이었다. 아프긴 했지만 이렇게 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솟아올랐다. 넘어지면 우는 아이처럼 어딘가 모르게 서러운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급한 데로 옆에 있는 휴지를 뽑아서 눈두덩이를 눌러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둘째가 갑자기 안방에서 나가더니 잠시 후 연고와 밴드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눈두덩이에 연고를 조금 짜서 발라주고 제일 작은 밴드를 꺼내서 붙여주는 것이었다. 마치 간호사코스프레라도 하는듯했다.


나 : "어? 이거 어떻게 꺼냈어?"


둘째 : "응. 의자 위로 올라갔지."


우리  구급함은 싱크대 상부장에 있다. 엄마 얼굴에서 피가 나니까 얼른 치료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식탁의자를 당겨 놓고 구급함에서 연고와 밴드를 꺼내온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의 행동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은 웃고 눈은 울고.. 얼마나 못생긴 표정이었을지 상상이 되어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둘째는 휴지를 뽑아서 내 눈물까지 닦아주었다. 그런 둘째의 모습에 감동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아픈 것도 잊고 있을 때쯤 둘째가 내 눈물이 쏙 들어갈만한 말 한마디를 던져주었다. 고맙게도..


"엄마. 내일부터 그냥 데리러 오지 마. 한 일주일간은 집에만 있어."


"하하하하. 너 엄마가 부끄럽구나."


"헤헤. 엄마도 부끄러울 거 아냐. 밴드 붙여서."


아주 그냥 귀엽고 앙큼한 녀석이다. 오늘 오전에 치료가 끝난 내 눈두덩이에는 하얀색 반창고가 붙여졌다. 내 모습을 본 둘째가 하얀색 반창고는 괜찮다며 내일부터 나와달라고 했다. '흐흐. 내가 나갈 줄 알고? 안 나갈 거지롱.'



사실 눈꺼풀이 찢어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옥탑방에서 살던 때의 다. 내 나이 27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해가 진 저녁이었는데 급작스럽게 엄마와 쇼핑을 가기로 했었다. 쇼핑은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것이다. 그 설레는 맘으로 급하게 신발을 신으려고 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왔다. 운동화를 신었던 것 같다. 뒤꿈치가 잘 들어가지 않아서 손으로 넣어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쾅'하는 소리가 옥상에 퍼지고 옆집과 옆집의 벽을 때리고 다시 엄마와 내 귀를 때렸다.



난간이었다. 시멘트로 투박하게 만들어놓은 계단난간에 얼굴을 내리꽂고 만 것이다. 아팠다. 그때도 눈물이 핑 돌만큼 아팠지만 그것보다도 안구가 터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눈을 움켜쥐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눈동자는 멀쩡했고 눈썹아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길로 응급실로 향했고 혹시 모를 골절을 염려해서 CT촬영을 했다. 퉁퉁 부운 눈두덩이의 뼈는 다행히 이상 없었고 곧바로 소독한 후에 벌어진 상처를 꿰매어주는 봉합술을 받았다. 결국 옷값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웃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의사의 어리둥절하던 표정이 생각이 난다.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신발을 신으려다가 난간에 박았어요."


"술 드셨어요?"


"아니요..."


"...?"


우습게도 맨 정신으로 내 얼굴을 자해한 꼴이 되었다. 굳이 그때와 지금의 상황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둘 다 왼쪽 눈썹아래가 찢어졌고 주위를 살피지 않고 고개를 숙이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한편 달라진 점을 꼽자면 내가 그때보다 늙었다는... 점과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그 당시만 해도 나이도 어리고 워낙 외모에 관심이 많던 때라 그런지 혹시나 작은 흉터라도 남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연고나 바르고 밴드나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사실 내 눈에는 상처도 잘 안 보이지만 나중에 남을 흉터는 더더욱 안 보일 것을 알기에 굳이 꿰매고 해서 흉터를 최소화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치료를 받으려면 남편이 필요하고 소독이나 실밥을 뽑는 일 때문에 여러 번 남편이 함께해야 하므로 그 모든 게 번거롭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상처만 잘 아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퇴근길에 연차를 내고 왔다며 내일당장 병원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흉터가 나면 어쩌냐고 덧붙였다. 기분이 묘했다. 정작 나는 내 상처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남편이 내 작은 상처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준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했다. 또 막상 병원에 와서 꿰매고 치료를 받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렇게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를 보는 남편의 마음보다 내 마음과 입장이 항상 우선이었나 보다.



남편의 마음은 예전의 나를 보던 그 마음 그대로였다. 나를 여전히 그때의 모습으로 지켜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앞으로 나도 나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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