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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pr 11. 2023

오징어실채의 실체

실패는 또 다른 발견


평소에 식사 때가 되면 밑반찬을 접시에 조금씩 덜어서 먹는 편이다. 왜냐면 젓가락이 여러 번 닿으면 반찬이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귀찮아서 반찬통째로 꺼내서 먹을 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다. 그런데 이렇게 덜어 먹다 보면 꼭 남아서 버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도자기밀폐용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도자기라 식탁에 그대로 올려도 이상하지 않고 조금 먹고 남으면 뚜껑을 채워서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모자라면 큰 반찬통에서 조금 더 덜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도자기밀폐용기 네 개를 주문했다. 사실 핑계였지만 집안일이 지긋지긋할 때는 이렇게 기분전환도 필요한 것 같다. 도자기밀폐용기중 하나는 매일 꺼내는 김치를 담고 다른 세 개는 그때그때 만들어둔 밑반찬을 덜었다. 나름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며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할 때였다. 마음은 급하고 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도자기용기의 김치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큰 김치통과 도자기용기를 꺼냈다. 보통은 도자기용기 안의 김치를 다 먹고 나서 씻어주고 말린 뒤에 새로 김치를 담았지만 그날은 좀 많이 바빴다. 그냥 조금남은 김치 위에 새로운 김치를 덜어주었다. 더군다나 그날따라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원래는 남편이 오면 다 같이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었지만 그날은 아이들이 너무 배가 고프다고 성화라 하는 수없이 먼저 밥을 차려주었다. 그러고는 나는 하던 요리를 마저 하고 아이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는듯했다. 금 뒤. 밥을 먹던 첫째가 반찬이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내가 그리 맛있는 걸 해준 것 같지는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 내 좋아하는 밑반찬 중에 우리 집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마른오징어실채무침이다. 고추장과 간장, 올리고당, 다진 마늘, 참기름등을 섞어서 보글보글 끓여준 양념에 살짝 볶아둔 오징어실채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주는 건데 간단하지만 대충 만들어도 맛있고 밥 한 그릇은 뚝딱인 반찬이다. 그러고 보니 그날 반찬 중에 이 오징어실채무침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쁘고 정신이 없어서 냉장고 속에 어딘가에는 있겠지 하고 말았었다.



그래. 거기 있었다. 내가 덜어놓은 김치 아래에.. 아이들이 김치랑 오징어가 같이 있다며 너무 맛있다고 난리가 낫던 것이다. 김치에서는 참기름향이 나고 오징어에서는 김치볶음향이 났다. 내 얼굴은 오징어무침만큼이나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엄마. 너무 맛있어."


"에고.. 엄마가 김치용기인 줄 알고.. 실수했네. 맛있으니 다행이다. 아하..하.."


"그래. 엄마. 맛있으면 된 거."


"그..래.. 맛있게 어.. 에흐."


"엄마. 그거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페니실린도 그런 거잖아. 세균배양하다가 모르고 방치해서 생긴 푸른곰팡이가 그 세균을 잡아먹어서 발견한 거. 맞지?"


"어. 맞아. 그래. 고마워. 엄마도 새로운 반찬하나 발견한 거네."



사실 그 오징어김치를 보자마자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이 뜨거울 만큼 부끄럽기도 했고 약간 음쓰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맛있다고 둘이서 얼굴을 반찬통에 파묻고 있는데 뺏을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음쓰같다는 생각은 내 편견일 뿐이었다. 새로운 요리메뉴를 개발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생각지도 못한 식재료의 조합과 요리법을 선보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창의적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절대 창의적인 요리를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평소 아이들의 실수에는 관대했다. 그럴 수 있다고,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주눅 들어있는 아이를 타이르곤 했다. 하지만 나의 실수에는 야박하기만 했던 것 같다. 누구나 살면서 종종 실수를 반복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내가 시력이 좋지 않아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실수를 하긴 하지만 그만큼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앞으로 나의 작은 실수에도 관대해지려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실패는 성공의 어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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