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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pr 20. 2023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장애인의 날이 뭐라고..

오랜만에 몸을 좀 움직였다. 정말 조금만 움직였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화사한 아이보리색의 리넨커튼을 달아주었다. 커튼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안방이 훨씬 밝아졌다. 창가로 비친 봄 햇살이 안방 한가득 내려앉아 눈이 번쩍 트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커튼을 바꾸는 데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의자에 올라서서 양팔을 위로 뻗은 채 낑낑대며 작업을 하고 나니 온몸에 습기가 차는 듯했다. 어제보다 10도나 오른 기온 탓에 더 후끈후끈한 것 같다. 창문을 열어두어 차가운 바람은커녕 따뜻한 공기가 밀고 들어왔다. 대충 정리를 해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것도 일이라고 금세 배가 고파왔다.



원래 작업 후에는 자장면이라도 먹어야 하는 건데 혼자서 시켜 먹기엔 부담스러우니까 간단하게 베트남쌀국수 사발면을 먹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혼자서 요리를 해 먹거나 반찬을 이것저것 꺼내놓고 먹기는 쉽지 않다. 그냥 간단하면서 빠르게 먹을 수 있고 설거지마저도 최소로 줄이는 게 답이라 생각한다. 포트에 물을 올려둔지 몇 분이 지나고 금세 물이 끓기 시작했다. 동시에 익숙한 지역번호의 발신자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주민센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혹시 근로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아파트 사시죠? 자가인가요?"


"그건.. 왜 물으시죠?"


"아. 이번에 장애인의 날을 맞아서 안부차 전화드렸고 여쭤본 거예요."


"네? 자가인 거랑 안부랑 무슨 상관인가요?"


"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안부차 연락드리면서 여쭤보는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다. 내가 장애인이라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가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내 집이 자가인지 임대인지 그게 왜 궁금한 것일까? 장애인의 날이면 날이지 갑자기 전화해 놓고 앞뒤 없이 웬 호구조사란 말인가.



차라리 지내는데 불편한 건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건 없는지를 물어봐주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했을 텐데.. 무슨 의도였을까? 장애인의 날이라 주민센터에서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나. 형식상 전화를 한 모양인데 이런 식의 전화는 안 한 만 못하다.



아무 생각 없이 받은 전화 한 통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비장애인이었을 때는 몰랐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줄도 몰랐고 장애인의 힘듦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물며 장애인을 만나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 모든 건 장애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적어도 오늘처럼 이왕에 전화를 줄 거면 호구조사 같은 거 말고 장애인이 바라는 동네가 어떤 것인지, 어떤 점이 불편하고 필요한 것인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내가 받고 싶은 전화는..


"안녕하세요. 주민센터입니다. 이번에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서 우리 동네에 계신 장애인 분들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설문조사 겸 전화드렸습니다.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이렇게 전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이동이 많이 힘들어요. 나가고 싶어도 쉽게 나갈 수가 없다 보니 더욱더 집에만 머무르게 되더라고요. 특히나 우리 동네에는 점자블록이 거의 없고 보도블록마저도 울퉁불퉁해서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어렵게 나가도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에요. 가까운 곳에 복지관이나 체육시설이 생긴다면 저 같은 장애인이나 노인분들이 이용하기에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죠.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아 보이네요. 말씀해 주신 대로 건의해 보겠습니다. 언제든 불편한 점 있으시면 주민센터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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