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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y 02. 2023

순수한 병아리

닭볶음탕은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단백질이 풍부한 닭고기와 각종야채, 그리고 쫄깃한 당면과 떡사리가 있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지 않고도 영양면에서나 간편함 면에서 훌륭한 메뉴임에는 확실하다.



닭을 손질하는 일은 좀 번거로운 일이다. 껍질과 기름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씻어줘야 하는데 내가 그리 꼼꼼한 성격은 아니라서 이 모든 과정이 대충대충이다. 하지만 워낙에 예민한 후각 덕분에 비린내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닭의 손질은 대충 하더라도 끓는 물에 삶아서 헹궈주는 일은 빼먹지 않는다. 삶아서 헹궈준 닭을 양념장에 재어두고 당면과 떡을 찬물에 불려두었다. 그리고 양파와 감자, 당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준비해 두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 때리며 기계처럼 움직이던 내 곁으로 둘째가 다가왔다.


"엄마. 오빠 왜 안 와?"



순간 아차 싶어서 휴대폰을 보니 아이가 와야 할 시간보다 1시간이나 훌쩍 지나있다. 올해로 4학년이 된 첫째는 내가 일일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학교에 가고 집에 올만큼 많이 자랐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간에 오지 않는 날이면 괜스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랴부랴 휴대폰을 들고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첫째가 들어왔다.


나 : "왜 이렇게 늦었어?"


첫째 : "엄마.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아이는 황홀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나 : "왜 왜? 무슨 일인데? 응?"


첫째 : "병아리. 병아리랑 산책했어. 히히."


나 : "아. 진짜? 하하. 귀여워라. 좋았겠네. 그런데 병아리랑 어떻게 산책을 해? 병아리가 너를 졸졸 따라와?"


첫째 : "아니. 당연히 손으로 안고 갔지. 히히."



얼마 전에 4학년 교실마다 부화기가 들어왔었다. 물론 첫째가 알려준 이야기다. 그 부화기에는 유정란 5구가 올려졌고 그중 4마리가 태어났다고 했다. 검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얼룩무늬의 다양한 병아리라고 했다. 이제 겨우 2~3일 된 병아리들이 얼마나 귀여울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났다.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반에서 인기가 단한 모양이었다. 쉬는 시간만되면 병아리 우리는 북적북적했고 서로 병아리를 보겠다며 밀치거나 다투는 일도 생겼다. 그렇다 보니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만져보기는 커녕 아이들 사이로 얼굴조차 내밀수가 없어서 제대로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 병아리와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된다.



첫째가 병아리와 오붓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덤벙대는 성격이 한몫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바람막이 점퍼를 교실에 그냥 던져두고 방과 후 수업을 갔고 평소 같으면 그대로 집에 왔을 텐데 용케 생각이 났는지 점퍼를 가지러 교실로 다시 갔던 모양이다. 아니, 병아리를 보려고 갔다가 점퍼를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덕분에 병아리를 만져볼 수 있었고 옆에 계시던 선생님의 권유로 병아리와 산책을 나간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왜 4학년이 다 컸다고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병아리 이야기를 하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한없이 아기 같았다. 포동포동한 양볼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병아리 이야기가 쫑알쫑알 흘러나왔고 그런 아이의 뾰족한 입이 병아리를 닮은 듯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저녁 메뉴가 닭볶음탕이다. 아이는 그 순수하고 병아리 같은 입으로 닭다리를 뜯으며 병아리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역시 병아리는 닭이 낳은 게 아니라 달걀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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