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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05. 2023

빗속의 그녀에게 무슨일이?

잊고싶지만 생생한 그날

스물일곱의 어느 겨울날.

차라리 눈이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비가 추룩추룩 내렸다.

우산을 들고 있는 손도 몹시 시렸고 뿌려대는 빗줄기 덕분에 고드름이라도 만들 기세로 옷이 젖어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소에는 미끄러워서 잘 신지 않던 신발을 신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바로 앞 사거리의 은행 앞을 지날 때였다.

약간의 비탈길과 쏟아지는 빗물, 그리고 미끄러웠던 내 신발이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아니 나자빠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멍하게 있던 내 정신은 급속도로 나를 일으켜 세웠고 주변의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나를 쏘아보며 웃고 있는 듯했다.

부랴부랴 우산을 집어 들고는 고드름을 생성 중이었던 옷을 대충 털어내고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괜찮아.. 내가 번개같이 일어섰으니 의외로 몇 명 못 봤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이곳만 벗어나면 괜찮아.. 에흐.. 쪽팔..'


다행히 엄청난 속도로 걸어서인지 금방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골목길을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서 어떤 여자분 한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넘어 적이 없어.. 그렇지? 아무도 모르지~'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분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 옆으로 붙어서 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빠르게 걷던 여자는 내 앞에 서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길을 물어보시는 것 같아서 온아한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오늘의 이 모든 하모니의 마침표를 찍는 듯 그녀가 말했다.




"저기..."


"우산 뒤집혔는데요??"


"...!!"




그랬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붐비는 사거리에 넘어진 것도 모자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뒤집힌 우산으로 빗물을 받으며 4차선 도로옆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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