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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10. 2023

소소한 방학 이야기

레고의 바다

아침 7시.

남편이 먹을 오트밀죽과 계란하나, 사과반쪽을 깎아두고 커피메이커에 어제 사두었던 헤이즐럿 원두를 한 스푼 떠 넣었다.

그윽한 헤이즐럿향이 온 집안에 퍼져 방 안에서 자고 있던 아이들의 콧속을 간지러 깨웠다.




잠시 후 남편이 출근을 했다. 그다음 거실에 누워 뒹굴고 있는 몽실몽실한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했다.

란 네 알과 밥 두 주걱을 크게 떠서 보슬보슬 윤기 나게 볶아주었다.

평소 같으면 바쁘게 아침을 준비해서 아빠와 다 같이 먹지만 지금은 여유로운 방학이.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딩굴딩굴하다가 씻고 미적거리며 학교에 간다.

아이들은 10시 반에 학교에 가서 방과 후 수업 하나만 하고 오면 된다. 그러니까.. 찍고 땡이다. 돌아서면 집에 온다.

40분의 수업짧다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종일 집콕생활이다.





방과 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점심시간이다. 그 후  아이들 티브이를 보다가 퓨터를 하다가 둘이 놀다가 싸우다가.. 혼나면 책을 잠깐 보는척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창밖을 보면 캄캄해진다. 다시 저녁시간이다.

여기에 학원 한두 개를 추가하면 요즘 아이들의 일상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하교 후에 책가방만 집에 던져놓고 밖으로 뛰쳐나갔었다.

물론 그때도 학원을 다니고 집에서 책을 본 친구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많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다.

나뭇잎을 돌로 으깨서 소꿉놀이를 하고 나비를 따라 뛰어다니기도 했.

그 당시 핫했던 바퀴 달린 신발인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미끄러지듯  앞머리를 휘날리며 돌아다녔다.

하루종일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배고프면 들어오겠지'하던 게 우리 어리적 모습이다.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뛰어놀았으면 좋겠는데. 지금도 내가 따라 나가지 않으면 밖에 나가질 않는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함과 동시에 코로나라는 놈도 함께 입학을 했었다. 그래서 혹여나 그 무시무시한 놈과 같이 어울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돼서 집안으로 불러들인 게 화근이었을까?

하긴 우리 때는 없던 유튜브라는 놈이 생겨서 코로나보다 더 전염성이 강하지 않은가. 아니 중독성이겠다. 리모컨 하나만 쥐어주면 하루종일 온 세상을 여행하고 온갖 장난감과 게임을 맛볼 수 있지 않은가.

요즘엔 아이들만 나가서 놀기에는 또 세상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굳이 나가라고 말은 못 하겠다.

심지어 나간 들.. 놀이터에는 비둘기가 미끄럼틀을 타고 까마귀가 그네를 탈 지경이다. 같이 놀 아이들이 없다. 학원의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짜인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살아간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모습이 짠




오랜만에 장롱 안에 넣어두었던 72L 리빙박스를 꺼냈다. 이 안에는 수십 개의 레고시리즈들이  가득 차 있다. 무게만큼이나 내가 놀아줘야 할 시간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작년 까지는 레고로 잘 가지고 놀아줬는데.. 아.. 이제 늙었나.. 힘들다. 무겁다.'생각하며 끙끙 거리며 거실로 꺼내왔다.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72L다. 내가 안에 들어가서 헤엄을 쳐도 될 것 같다. 부품 하나를 찾으려면 손을 깊숙이 넣고 휘저어줘야 하는데 그러면 손가락이 전부 까질 것 같다. 결국 아이들이 어릴 때 사두었던 비닐매트를 꺼내서 그 위에 전부 쏟아부었다.

'쏴~~~ 쏴~~'

부어주는데 무슨 파도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이건 뭐.. 스트레스는 좀 풀리는 듯?

그렇게 파도만큼이나 넘실대는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며 세 시간을 놀아줬다.




이 많은 레고들을 언제 사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어떤 것이 어떤 것의 시리즈부품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하나하나 조각을 맞추다 보면 내가 원하는,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집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즐겁다. 이 모든 즐거움들이 하나의 작은 블록이 되어 1년 뒤, 3년 뒤, 10년 뒤에는 우리만의 마음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엄마와 놀았던 시간을 언제든 찾아와서 들여다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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