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 Feb 01. 2023

방학 후 개학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가득

아이들에게는 짧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길었던 방학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드디어 개학날이다.



7시에 울리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주방으로 가서 어제 닦아두었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깨면 귀신같이 따라 나오는 첫째가 오늘도 어김없이 깨서 스멀스멀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어 나왔다. 항상 어떻게든 엄마를 웃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아이다. 뒤이어 알람이 울리자 잠이 덜 깬 둘째가 짜증이 섞여  바닥을 쿵쿵 걸으며 거실로 나왔다. 이럴 때는 그냥 엉덩이를 톡톡해주면서 귀엽다고 해주면 모든 짜증이 가라앉는다.



화장실에 다녀온 둘째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방학이 좋아? 아니면 개학이 좋아?"


물어볼 것도 없이 개학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말해주었다.


"음.. 엄마는 둘 다 좋아.


"아니. 하나만 골라 봐."


"아.. 그럼.. 음.. 개학이 좋지."


"엄마는 우리가 없는 게 좋구나. 힝.."


"아니야.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좋은데, 엄마 생각에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뛰어노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 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엄마 마음이 좋지 않거든."


이렇게 포장해 주었다. 사실 그렇긴 했다. 이번 겨울 방학만큼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야 집에서든 밖이서든 마냥 즐거워 하지만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 안럽기만 하다.



겨울이라 춥기도 많이 추웠지만 무엇보다도 남편의 발령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 바빠진 탓에 어디 가자고 말하기도 눈치가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에는 내가 운전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태우고 눈썰매장이며 놀이동산이며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운전은커녕 내 몸하나 간수를 못하니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밖에 나가면 화장실을 찾아가는 게 제일 힘들다 보니 밖에서는 거의 물을 마시지 않을 정도이다. 그나마 둘째가 있어서 아이와 손을 잡고 화장실을 잘 찾아가긴 하는데 입구에 있는 유리문에 부딪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아무 생각 없이 흔드는 내 팔에 다른 사람이 맞을까 봐 움츠려 들기도 한다. 이렇게 매사에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수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거라 하겠다. 경험이 쌓이고 내공이 쌓일수록 겁은 더 많아지고 려움이 커지는 것 같다.



 질 무렵이 되면 주위는 점점 캄캄해지는데 간판이나 가로등의 불빛이 채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보행이 더 어려워진다.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라 분명 주위는 어두웠는데 내가 매일 가던 길이기도 하고 그날따라 뭔가 잘 보이는 것 같아서 정말 씩씩하고 활기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에 약간의 내리막으로 내려가던 중에 무언가 내 무릎에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야. 이 여자가 미쳤나?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음.. 제 눈은 눈썹아래에 잘 붙어 있습니다만.. 나는  그때 분명, 내 앞쪽으로 걸어오던 할아버지를 보았고 그래서 나도 옆으로 피해 주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몰라 순 깜짝 놀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할아버지 옆에는 어린아이가 함께 걷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무릎으로 어린아이의 몸을 치고 만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할아버지의 말에 나 또한 상처를 받은 건 사실이었다. 마음이 너무 쓰려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못 봐서 아이가 다칠 뻔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시력을 잃어가는 게 나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 내 부주의로 누군가를 해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칠까 봐 금이야 옥이야 하게 되는 게 부모 마음인데 자는 또 얼마나 이쁘겠나. 내가 그런 손자를 본의 아니게 때리게 되어 얼마나 화가 났을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아마도 두고두고 나를 욕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 뒤로 내 눈을 믿지 않았다.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몸소 깨달았다. 내 움직임하나에 발 한 발짝에 조심스러워졌다.



핑계 같지만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니 그런 이유에서부터 게으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루했던 방학이 지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시 신나게 지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 심지어 점심까지 해결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물론 머지않아 봄방학이란 놈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땐 좀 용기를 내서, 아니 조심스럽게 나가봐야겠다. ^^



작가의 이전글 소소한 방학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