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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1. 2023

너에게 좋은 시력이 있다면 나에겐 초 능력이 있다

나를 스치는 모든 인연들은 내가 바로 앞에 있는 물건도 못 찾을 때면 참으로 신기해한다. 하지만 나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과 간판의 글자를 단번에 읽어내는 그대들이 더 신기하다.


"여기서 저게 보인다고?"


"그럼 안 보인다고??"



당연한 것이겠지? 그대들의 시력은 보통임이 분명한데 나는 그런 그대들이 참 멋있다. 마치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 같다.



나라고 질 수는 없다. 빼앗아간 시력대신 나에게도 놀라운 능력이 몇 가지 있다. 한 가지도 아니고 무려 몇 가지다.



첫 번째는 반려견도 깨갱할 정도의 놀라운' 청력이다. 시각장애인은 귀가 예민하다는 소리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청력이 뛰어나게 좋다기보다는 예민함이 남다르다. 평소에도 눈은 멍 때리고 있을지언정 귀는 항상 열려있다.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남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나만 혼자 듣는다. 길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지만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단번에 알아챈다. 기침소리 나 "아..", "어?" 이런 짧은소리만 들어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시력으로는 사실 혼자서 밖에 나가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예민한 청력 덕분에 주변에 차가 오는지, 사람이 다가오는지, 지금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기에 혼자서도 외출을 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절대 음은 절대 아니더라. 하.



두 번째는 까 깨갱했던 반려견이 친구 하자고 할 정도의 후각이다. 회식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의 저녁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들 옷에 뭐가 묻으면 그 고유의 냄새가 난다. 물론 깨끗이 빨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냄새만으로 흘린 부분을 찾아낼 수는 있다. 특히 내 코는 곰팡이에 특화가 되어있다. 욕실이나 주방, 베란다 등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면 귀신같이 알아챈다. 청소할 때를 놓치면 그 곰팡이 냄새가 나를 부른다. 눈의 부족함을 이 예민한 후각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세 번째는 손끝으로 느끼는 촉감이다.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이 보이진 않아도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보면 머리카락을 잡아 낼 수 있다. 그 예민한 손끝으로 옷의 소재와 짜임을 느끼면서 옷을 찾아내기도 한다. 또 작은 구멍 속의 물건을 손만 넣고도 금세 찾아낸다. 남편과 아이들은 서랍 속의 물건을 잘 찾지 못한다. 왜냐면 눈으로만 보고 대충 뒤적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물건이 있을법한 곳 손을 넣어 느낌으로 딱 그 물건만 꺼낸다. 내가 꺼낸 물건을 보며 "잉? 분명 내가 찾을 땐 없었는데.." 한다. 이쯤 되면 마술사도 울고 갈 재능이 아닌가? 사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능력은 있긴 하겠다. 하하.



네 번째는 여자들에게만 있다는 육감이다. 같은 뜻으'촉'이라고도 한다. 보통 눈이 멀쩡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으로 그 사람의 기분과 행동을 파악하지만 나는 목소리나 작은 움직임의 소리 그리고 느낌으로 그 모든 것을 파악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육감은 예민하게 나타난다. 아. 근데 이건 방법만 다를 뿐 어떤 여자들이나 비슷할 것 같긴 하다. 남편의 목소리톤 하나에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정도 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장애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부족한 부분이 비장애인에 비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나빠지는 내 시력 덕분에 내 시간에 맞춰 조금씩 내 모든 감각이 꺠어나는 것 같다. 예전보다 더 소리와 냄새, 그리고 촉감에 더 의지를 하는 만큼 그런 감각들이 더 예민해지고 있다.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잃는 것에 너무 많은 마음을 쓰고 안타까움에 빠져만 있지 말고 그 잃음을 대신할 무언가가 곧 다가올 거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 것이고, 해는 어김없이 떠오를 것이 분명하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한테도 초음파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길을 갈 때도 부딪힐 일이 없고 내가 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잖아."


"그래. 엄마도 그러면 좋겠다. 꼭 초음파가 아니더라도 더듬이 같은 거라도 생기면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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