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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4. 2023

체온계 없이도 열을 재는 나만의 방법

말이 없는 체온계

지난 일요일에 줄넘기를 했었다. 나는 아니고 아이들과 아빠만 밖으로 내쫓다시피 했다. 하필이면 그날이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줄넘기를 시킨 게 화근일까. 아이가 열이 난다. 학교를 마친 첫째가 가방은 반쯤 흘러내린 채 현관문을 열고 몸도 함께 흘러내리며 들어왔다.


"엄마, 나 몸살 났어.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춥고.."


얼른 이마를 만져보니 따뜻했다. 곧이어 열을 재니 다행히 미열이었다.


"아구구 오늘 힘들었겠네. 손 씻고 옷도 갈아입고 와. 약 먹고 간식 먹자."



목이 아프거나 코가 막히는 증상이 전혀 없는 것을 봐서는 몸살인 듯했다. 잘 먹고 푹 쉬면 나을 것 같았다.



올해 11살이 되는 첫째는 요즘 식욕이 남다르다. 입에 넣으면 씹기도 전에 사라지고 포시락 봉지 소리만 나도 귀가 쫑긋 선다. 오늘은 해열제도 그렇게 맛있단다. 간식으로 준 핫도그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다행이다. 잘 먹으니 금방 좋아질 것 같았다.




새벽 4시. 첫째가 뒤척거리길래 이마를 만져보니 뜨끈뜨끈하다. 이럴 땐 손과 발도 만져보면 꼭 얼음장같이 차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춥다고 한다. 이불을 두 개 덮어주고  "약 먹을래?" 했더니 싫단다. 잠에서 깨기가 싫은 모양이다. 옆에서 토닥토닥해 주니 금세 잠이 들었다. 짧았던 숨소리도 이내 편안해졌다.



평소 같으면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10분 이상 잠을 못 이루면 체온계를 꺼내고 아이에게 직접 재어보라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잘 자고 있다. 이불속에 손을 넣어 발을 살짝 만져보니 따뜻해졌다. 열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자다가 열이 나면 체온게를 재어보는 게 참 힘든 일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휴대폰 불빛만으로도 체온계의 숫자가 보였었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초등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불이 꺼진 방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37.5도가 넘으면 "삐삐삐~"하는 경고음이 울려서 대충 가늠은 했고 이제는 뭐, 아이들 보고 직접 보라고 한다.



그렇다고 자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뜨라고 해서 체온계를 내밀고 싶지는 않다. 얼마나 눈이 부시고 귀찮을까. 그래서 체온계 대신 내가 임의로 열을 체크하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이 열이 나면  일단 잠을 많이 설친다. 그리고 이마와 가슴이 뜨겁고 손발이 얼음장같이 차다. 몸은 잔뜩 웅크리고 피부에는 보드랍다고 느껴질 만큼 수분기가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숨소리가 빠르다.



이 모든 게 충족하다면 그제야 체온계를 꺼낸다. 다행히 오늘은 발도 따뜻해졌고 잠도 잘 자고 있다. 아침이면 많이 좋아질 것 같다. 아니 좋아졌으면 한다.



오늘은 봄방학식이다. 그래서 더더욱 가야 한단다. 친구들과도 인사를 해야 하고 사물함의 물건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분명 주말까지만 해도 화요일의 방학식이 두렵고 점심마저도 집에 와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만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황금같이 귀하디 귀한 방과 후 수업이지만 오늘만큼은 빼먹으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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