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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4. 2023

방앗간 옆 무인상점

아이가 당황한 이유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방앗간이 하나 있다. 참깨나 들깨를 볶는 날이면 그 고소함이 온 동네로 퍼져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비둘기란 비둘기는 다 끌어모으는 것 같다. 방앗간 아저씨는 볶은 깨를 가지고 나와서 큰 대야를 번갈아가며 깨를 부어준다. 아마도 식히려고 그러시는 듯하다. 그 덕에 떨어진 깨를 주워 먹느라 비둘기들은 신이 나고 나는 겁이 난다. 뒷짐을 지고 저리 여유롭게 걷다가 혹시나 내가 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내 발에 밟히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난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분명 비둘기는 억울하다고 나를 째려보겠지만 나도 억울한 건 마찬가지다. 저 날개아래 겨드랑이 속에 있다던 오만가지의 세균과 맞닥뜨려야 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하필이면 그 방앗간 옆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며 불량식품을 파는 무인상점이 하나 있다. 비둘기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우리 아이들도 나만 보면 무인상점으로 끌고 간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첫째가 몸살끼가 있어서 둘 다 방과 후수업을 빼먹고 같이 나오라고 했고 사물함을 비우는 관계로 짐이 많아서 두 아이의 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역시나 짐은 많았다. 오늘만큼은 그냥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두 아이를 함께 데리러 갔기에 못 이기는 척 무인상점으로 향했다.



방앗간을 지날 때쯤이었다. 첫째는 항상 깨를 주워 먹는 비둘기를 쫒으러 뛰어간다. 그게 뭐 그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저 날갯짓에 날리는 오만가지의 세균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둘기가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괜히 숨을 참는다. 그런데 오늘따라 비둘기들이 걸어만 다니는 건지 날아오를 때 나던 '푸드닥하'하는 소리가 나질 않았다. 너무 순식간이긴 했다. 아이가 너무 살금살금 뛰었는지 미쳐 도망가지 못한 건지.. 첫째가 나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엄마, 내가 비둘기 꼬리를 밟아버렸어 하."


"어? 하하. 뭐야. 비둘기 괜찮은 거야?"


"몰라. 막 뛰어가던데..?"



비둘기는 분명 '새'였지 않나? 쥐도 아닌데 왜 뛰어다니는 걸까? 내가 이래서 비둘기를 못 믿는 거다. 언젠가는 내가 밟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누가 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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