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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6. 2023

'실명' 그거 별거 아니더라

심각한 건 싫어

며칠 전, 아이와 장난을 치다가 아이 가 들고 있던 장난감에 내 눈을 찔릴 뻔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장난감을 뺏어 들고는 말했다.


"야. 하마터면 엄마 눈에 찔릴 뻔했잖아. 엄마 실명하면 어쩌려고 그래. 조심 좀 하자."


내가 말해놓고도 이거 좀 이상한데 싶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듯하더니 동시에 빵 터졌다.


"하하. 엄마, 어차피 잘 안보이잖아. 하하."


"하하. 그래도 찔리면 아프잖아."



우리끼리 배꼽을 잡아가며 웃고 있는데 남편이 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엄마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사과해 인마."



그 진지함은 또 왜 이리 웃기던지.. 아이와 나는 다시 깔깔대며 웃어댔다. 그랬다. 우리는 이렇게 실명으로도 빵 터질 만큼 아무렇지 않아 졌다. 내가 이렇게 바뀐 것도 다 남편과 아이들 덕분이다. 만약에 나를 배려한답시고 말 한마디에 조심스럽고 과도하게 나를 챙긴다면 나는 아마 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남편은 지하주차장에서도 나만 놔두고 혼자 가버릴 만큼 나의 시각장애 자체를 깜빡깜빡하는 것 같다. 내가 애타게 부르면 그제야 "아 맞다." 하며 내 손을 잡는 사람이다.



우리 집에서 장애는 반창고를 붙이는 것만큼이나 별거 아닌 것이 되었다. 내가 요리를 하다가 무언가를 떨어트리면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하던 일을 멈추고 와서 찾아주고 간다. 어떤 날에는 찾아달라고 애타게 불러도 모른 척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에잇, 치사한 놈들. 젤리 주나 봐라." 한다. 그러면 둘이 동시에 쏜살같이 달려온다. 귀엽지만 치사한 놈들이다. 가끔 우유나 식품 포장지에 적힌 유통기한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에게로 간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이의 눈앞에 불쑥 봉지를 내밀어도 짜증하나 내지 않고 곧바로 유통기한을 읽어준다. 빨래를 개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양말의 짝꿍을 찾느라 요리조리 비교를 하고 있으면 둘째가 "엄마, 그거랑 그거 짝꿍 맞아. 그 옆에 거는 저기 옆에 있는 거랑 짝꿍이야"하며 그림을 그리다 말고 알려준다. 참 착한 아이들이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특히 둘째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도 발표나 책 읽는 목소리가 반에서 제일 작을 만큼 남 앞에 서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한다. 그런 아이가 장애인의 날 교육을 들으면서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바로 시각장애인이야"라며 떠들어댄 모양이다. 심지어 학교 참관 수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할 때도 손을 번쩍 들고서는 " 선생님, 우리 엄마는 시각장애인인데 어떻게 와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무슨 장애가 자랑도 아니고, 하. 아이들은 참 맑고 순수한 것 같다.



요즘엔 학교나 직장등에서 '장애인인식개선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모양이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우리 어릴 때와는 다르게 장애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말이다. 장애인이 된 나 역시도 장애인은 불쌍하고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는 인식은 없다. 다만,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문제는 여전하다. 그렇다 보니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을 쉽게 열어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가끔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숨기려 하게 된다.



내가 장애인이 되고 보니 장애인 그거 별거 아닌 거더라. 눈이 나쁘면 안경을 스고, 귀에 문제가 있으면 보청기를 쓴다. 다리가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도 한다. 나는 그냥 그러한 불편함이 조금 오래 지속되는 것뿐이다. 수술이나 치료가 불가능 한 그런 상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맞다. 하지만 그 도움이 항상 고마운 것은 아니다. 가끔은 부담스럽고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너무 정중한 도움이 그렇다. 그냥 가볍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아니 그 마저도 본인이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밖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서 붙이는 반창고 같았으면 좋겠다. 내 장애가 별거 아니었으면 좋겠다. 심각해지고 불쌍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집에서처럼 농담도 할 수 있을 만큼 무덤덤해졌으면 좋겠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불편하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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