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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6. 2023

오늘의 랜덤박스는 너였구나

내 입이 이렇게 컸던가?

작년쯤이었나? 그날은 은이네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하는 00 이를 제외하고 원이엄마와 나는 은이네 집으로 향했다. 은이네 집에 도착해서 손을 씻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우리 뭐 먹을까?"


"그러게요. 뭐 먹을까요?"


"음.. 찜닭? 피자? 떡볶이? 돈가스?"


"음.."


"언니는 뭐 먹고 싶어요?"


"아.. 나는 아무거나.. 너희는 뭐가 먹고 싶어?"


"저도 아무거나요. 뭐 먹죠?"


"음...."


"음..?"


이럴 땐 정말 누가 딱 정해주면 좋겠다. 우리 셋은 이런 면에서는 너무 비슷한 성격 탓에 서로의 눈치를 보며 30분 이상은 메뉴로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는 똑 부러지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00 이가 있을 때가 편하기도 하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결정을 했다. 간단하면서도 골고루 먹을 수 있어서 나에게는 그다지 간단하지만은 않은 찜닭으로! 그러나 걱정은 없다. 언제나 친절한 은이엄마와 원이엄마가 있으니까.



찜닭이 도착하면 은이엄마와 원이엄마는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포장을 풀고 세팅에 들어간다. 멋지다. 나는 조금은 바보처럼 멀뚱멀뚱 쳐다보며 괜스레 하는 척만 해본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한입도 먹지 못한 채 맛있는 찜닭을 식탁에게 양보해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잠시 투명인간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착하고 상냥한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내 앞접시에 닭과 떡, 감자, 당면사리를 덜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공주대접을 받았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스며든 찜닭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은이엄마와 원이엄마는 내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길을 갈 때도 내 손을 잡아주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에도 내 것을 챙겨봐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니 집주인이 준비해 준 커피와 디저트가 차려졌다. 식탁 위에는 접시 두 개가 놓였는데 왼쪽접시에는 쿠키가 담겨 있는 것 같았고 오른쪽 접시에는 아까 내가 사 온 마카롱인지 빵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색깔로도 충분히 어떤 음식인지 구분을 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색깔이 구분이 되질 않아 음식 또한 잘 알아볼 수가 없어졌다. 일단은 포크를 주는 걸로 보아 빵이나 과일이 아닐까 추측했다. 사실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이 그렇게나 나쁘냐고 놀랄 것을 생각하니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눈은 나빠도 장애인이 아닌 척하고 다녔으니까.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내가 너무 커피만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차려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급한 데로 포크를 쥐고 오른쪽 접시에 있는 무언가를 쿡 찔러보았다. 항상 그러하듯이 오늘도 내 포크는 랜덤박스다. 뭔가 묵직한 것이 집혔는데 떨어트리기 전에 내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조금 큰가 싶었지만 잘라먹다가 떨어트릴 것만 같아서 구겨 넣다시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 음.. 어라..? 설마..'


후회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치.... 즈.. 케..? 에이.. 설마...'



그랬다. 그것은 분명 치즈케이크였다. 커피숍에 가면 6천 원씩 하는 그 작은 듯 푸짐한 그 조각케이크였다. 어른 두세 명이서 앙증맞은 포크로 케이크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조금씩 나눠먹던 그 치즈케이크란 말이다. 순간적으로 '이걸 뱉을까? 아님 웃으면서 자백을 할까?'고민했지만 입안 한가득 쑤셔 넣은 치즈케이크를 우걱우걱 다 씹어 먹을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왠지 모르게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받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어치우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커피 한 모금으로 마무리를 했다.



'아마 못 보지 않았을까? 아니 봤을 거야. 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바보야. 왜 하필이면 포크로 그걸 집어든 거냐고..' 마음속이 복잡했다. 할 수만 있다면 포크를 들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봤을 것이다. 두 눈 멀쩡한 사들이 못 봤을 리가 없다. 완전 범죄는 없다. 심지어 두 사람이 포크를 쥐고 그 케이크를 야금야금 예쁘게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소중한 것을 내입에 쑤셔 넣어버린 것이다. 설령 못 보았더라도 갑자기 사라진 케이크의 행방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라리 누군가 먼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아이참. 하하. 언니 그걸 혼자 다 먹으면 어떡해요. 같이 좀 먹자요. 하하


"하하. 봤구나. 미안미안. 내가 잘 못 보고.. 빵인 줄 알았어. 아하하하."


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내가 민망해할까 봐 나를 배려해 준 것 같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머나. 저 언니 욕심 좀 봐라. 저걸 한입에 다 꾸역꾸역 먹나. 세상에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나는 그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포크도 함부로 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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