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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7. 2023

내가 만든 쿠키. 너를 위해 구웠지.

취미를 돈으로 바꾸지 말라

예전에 꽃꽂이를 배운 적이 있었다.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6개월간의 수업과정을 마치고 나니 거창하게도 플로리스트 수료증을 주었다. 그 덕에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 계기로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만 생각하면 꽃집에서 일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매일같이 꽃만 만지고 식물만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역시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커다란 화분을 작디작은 나에게 옮기라고 했다. 뭐 그럴 수 있다. 사장님도 여자분이 셨으니, 돈을 벌겠다고 온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거.



어떤 날은 출장도 가야 했다. 노트북과 서류가방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10kg의 흙포대와 모종삽을 들고 말이다. 꽃가게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였는데 나는 끙끙거리며 올라가서 202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얼굴만 빼꼼히 내민 아주머니께서 복도에 있는 화분을 가리키며 "저거 좀 부탁해요. 다하시고 나면 깨끗이 쓸어주시고 가세요." 했다. 나는 남의 집 복도에 쪼그려 앉아서 분갈이를 하기 시작했다. 천장에 달린 센서등이 꺼질라치면 얼른 일어나서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불을 켜놓고 다시 쪼그려 앉아서 임무를 수행했다. 분갈이를 하는 동안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서글픔이 려왔다. 그 일 이후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 삼아 꽃은 그냥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비즈공예를 해보겠다고 관련책도 사고 재료들을 이것저것 사들였다. 모래알만큼이나 작은 비즈들을 투명한 낚싯줄에 꿰어서 목걸이와 팔찌, 귀고리등을 만들어서 온라인몰에 팔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했었다. 물론 이것도 오래가질 못했다. 팔찌 하나를 만들려면 내 시력으로는 남들의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금방 지친 것 다. 아니다. 온라인몰에 팔지 말았어야 했다. 취미가 돈이 되어버리니 금세 시들어진 모양이다



어쩌면 끈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시작은 잘하고 끝이 애매한.. 그 누군가의 핏줄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믿고 싶지 않지만 유전자의 힘은 의지로는 막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 시력마저도 그 무시무시한 유전자의 힘이 아니던가



취미는 무엇이든 옳은 거다. 하지만 그 모든 취미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되어 버리면 옳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취미는 언제나 취미로 아름답게 남겨놔야겠다.



다행히 예전부터 질리지 않고 꾸준히 하는 취미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요리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생초콜릿을 만들어서 남자친구와 주변지인들에게 선물 했었다. 케이크도 만들어보고 빵도 구다. 한식이야  집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었던 터라 그땐 그것이 요리도 아니고 취미도 아닌 그저 끼니를 때우는 밥이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상 그때 먹고살기 위해 했었던 모든 음식들이 지금 내가 겁 없이 가스레인지를 켜고 온갖 음식들을 해볼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 생각한다.



지금이야 글쓰기에 빠져서 집안일에 많이 소홀해졌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요리영상을 보고, 아니 듣고 따라 하는 게 낙이었다. 가끔은 쿠와 빵도 굽는다. 어떻게 하면 가족들에게 설탕과 밀가루를 조금 덜 먹이고 건강한 음식을 먹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밀가루 대신 아몬드분말을 사용하고 설탕대신 스테비아를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 만들어 곤 했다.



초코머핀과 크로와상
크로플과 식빵


하지만 결론적으로 밀가루와 설탕이 들어가야 맛이 있더라. 물론 아몬드와 계란, 소금, 스테비아만으로 만든 전자레인지 빵은 맛이 좋았다. 그것 빼고는 원래의 레시피에서 설탕의 양만 줄이고 만들었는데 그래도 맛이 괜찮았는지. 둘째가 특히나 내가 만든 쿠키를 굉장히 좋아한다. 남편의 지인부부도 내 쿠키가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었지만 그 맛이 안 난다며 그냥 직접 구워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해서 주야장천 구워대기도 했었다. 덕분에 홍시나 벌꿀등 지인의 처갓집에서 농사를 지은 귀한 선물까지 받았었다. 집에서 아이들만 돌보던 내게 내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이었다.



고맙다는 말과 맛있었다는 칭찬을 듣노라면 나도 모르게 버터를 왕창 구매하고 주식이 쿠키인 사람처럼 하루종일 굽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구워댄 쿠키를 정작 나는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원래 초코칩쿠키를 좋아하지만 전을 부친사람은 그 냄새에 이미 질려버린다는 것처럼 나도 그다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심히 구운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여기저기 나눠주고 맛있다는 후기를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자랑같이 들리겠지만, 가끔 쿠키를 팔아보는 게 어떻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물론 인사치레로 하는 말 일수도 있다. 나는 그때마다 손사래를 친다. 내 즐거움과 행복을 돈으로 망치고 싶지가 않다. 가끔씩 만드는 쿠키로 주변사람들과 잠시나마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 쿠키의 가격은 "맛있어요."이니까.


초코칩 쿠키


아마도 내 쿠키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에 비해 모양은 조금 어설플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성만큼은 누구보다 단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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