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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18. 2023

사랑한다면 많이 봐주세요

내일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녹음기를 틀은 것처럼 똑같은 말씀을 하시곤 한다.


"제사 그거 아무 필요 엇다. 살아 있을 때 밥 한번 더 사주고 얼굴 한번 더 봐야지. 죽은 사람이 뭘 알겠냐."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나중은 없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보고 더 살피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삶이 그러하던가.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을 하기 일쑤이다. 또 주부는 어떠한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매일같이 집안일을 하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만 간다. 그렇다 보니 사는 게 바쁘고 형편이 안되어서, 깜빡해서 등 여러 가지의 이유가 생겨 손가락하나로 터치만 하면 되는 전화 한 통도 하기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잠시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지금 감은 두 눈을 다시는 뜰 수 없다고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지금껏 나를 키워주신 엄마와 아빠인가? 아니면 오늘도 전쟁 같은 아침을 함께 했던 남편과 아내, 토끼 같은 아이들인가? 누구라도 좋다.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이마와 양볼, 눈과 입술, 코와 귀.. 얼마나 자세히 생각이 나는가?



나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제 보았던 것을 내일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시간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의사가 그랬으니까. 나도 그 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히 늦춰지길 바랄 뿐이다.



어제 글을 쓰기 위해 2년 전에 찍어두었던 빵과 쿠키 사진을 찾아보았다. 겨우겨우 찾아낸 사진은 내가 2년 전에 보았던 사진과는 많이도 달랐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이게 머핀인지, 쿠키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고 그때만 해도 먹음직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실망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작은 실망들이 나중에는 큰 좌절로 나를 덮쳐버릴지도 모르니까.



다행히 내 눈은 이틀에 한번 꼴로 밝은 세상을 보여준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물론 2년 전 보다도 훨씬 찌그러지고 뿌옇게 보이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컴컴해 보이는 어제보다는 훨씬 맑고 밝게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야말로 선물 같은 날이다. 한때는 매일이 이런 밝은 날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바람마저도 접어둬야 했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어둑어둑한 세상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그 뒤에 간신히 찾아온 밝은 세상..  그 이후로 어둡거나 밝거나 상관없이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이틀마다 찾아와 주는 밝은 세상에 감사할 뿐이다.



이런 날에는 어제 아쉬웠던 것들을 해본다. 쿠키사진도 다시 한번 보고, 음.. 여전히 흐리지만 어제보단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이제 내 몸만큼이나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두 아이를 번갈아가며 내 무릎에 앉히고서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맨질맨질 윤이나는 이마와 양볼, 나를 닮아서 짙은 눈썹, 그 아래 반짝이는 눈동자, 귀여운 콧방울과 작은 입술.. 예쁘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 모습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게 내 눈 속에 담아둔다. 내일은 또 보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들을 볼 수 없다 것은 다르다. 나도 알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눈에 아무리 담아도 자꾸 까먹어버리는 게 속상할 뿐이다. 오늘 담고 내일은 또 잊고.. 다음날은 또 담아야 한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좋은 눈도 아니고 밝은 세상도 아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때 단 한 번만이라도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자란 나의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예쁠지..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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