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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Mar 01. 2023

엉덩이로 연필도 부숴버리는 엄마가 아프다니..

그리고 20년 기념 선물

며칠 전 아이들과 놀아주겠답시고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채소만 먹던 사람이 갑자기 고기를 먹으면 탈이 난다고들 하지 않나. 나도 탈이 났다. 일명 '햄버거 놀이'를 한다며 첫째가 바닥에 엎드리고 그 위에 내가 고기패티가 되고 또 그 위에 둘째가 엎드렸다. 내 몸무게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했다가는 아동학대는 물론이고 큰일 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예 무게감을 안 주면 아이가 실망을 하니까.. 적당히 무게도 느낄 수 있도록 살짝만 내 몸을 들어주고 그 위에 올라탄 둘째의 무게까지도 버텨야 했다.



아니 근데.. 이런 건 아빠가 해주는 놀이 아닌가? 항상 몸으로 하는 놀이는 내가 해주고 있다. 사실 난 작고 연약한데 말이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쨌거나 나는 이미 햄버거 패티였다. 시작을 했으니 적어도 네다섯번은 해줘야 했다. 나는 알았다. 분명 이 짓을 하고 나면 내일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역시나 다음날 아침부터 근육통에 시달렸다. 언제나 주방 싱크대 상부장에 배치되어 있는 타이레놀을 꺼냈다. 이 한알이면 두통이던 근육통이던 말끔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타이레놀을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굳이 이렇게 뜯어야만 할까? 다른 약들처럼 은박으로 쉽게 뜯어도 될 텐데.. 아파도 정신만은 말짱하라는 배려에서 나온 건지 그 세모 귀퉁이를 찾아서 뜯어야만 약을 먹을 수 있다. 덕분에 다른 약들과 구분이 돼서 나에게는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긴 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알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예상한 대로 타이레놀의 효능은 뛰어났다. 좀 전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근육통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괜히 의약품이겠냐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이 문제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두통과 함께 엄청난 근육통과 관절통이 느껴졌다. 오늘은 남편 아침도 챙겨주기 힘들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굶길 수가 있나.. 냉동실에서 핫도그를 하나 꺼내서 커피와 함께 주었다. 내 입장에선 정말 대단한 노력이었다. 오늘은 타이레놀 한 알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두 알을 급하게 입속에 털어 넣었지만 통증은 가라앉질 않았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먹었지만 두통과 근육통은 전혀 좋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열을 재어보니 38도가 훌쩍 넘었다. 예전에 폐렴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열이 나니까 몸이 아팠다. 이번에도 열이 나서 몸이 아픈 것 같았다. 온몸의 뼈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처럼 뼈의 마디마디가 나를 향해 소리치는 듯했다. '그래. 너희들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제발 좀 이제 그만..'이라고 나도 외치고 싶었다'



퇴근한 남편이 자기도 오늘 피곤했다며 아픈 척을 했다. 그러면서 안방에 누워있는 내 옆에 와서 체온계로 내 귀가 아닌 자기의 귀를 재어 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아까 내가 만들어 놓은 등갈비김치찜에 '심술'까지 두병을 해치워버린 사람이다.


"와. 나 38도다."


"아니. 술을 마셨는데 당연히 열이 나겠지."


예전부터  그랬다. 내가 입덧을 할 때도 자기가 더 속이 안 좋다며 음식을 가렸고, 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자기도 오늘 다리가 아프다고 하고 내가 또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자기도 아프다고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 그냥 나 혼자 아프고 싶었다. 물론 한집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파서 그냥 누워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내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많다. 양념이 어디에 있는지, 세제는 어떤 것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빨래는 개어서 어느 서랍에 넣어야 하는지 등등 일일이 말로 설명하느니 내가 일어나서 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거기까지도 바라지 않았다. 그냥 내가 아플 땐 그냥 나 혼자 살짝 아팠으면 싶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다. 오늘 아침, 아니 새벽 1시에 고통 속에서 눈이 떠졌다. 온몸은 마디마디가 분리된 것 같았고 특히나 두통과 허리, 다리 통증이 심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기필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시간에 남편도 깨어 있었다. 열이 나서 나처럼 아팠던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진짜였구나.' 우리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전 7시쯤에 아이들이 깨자마자 아침을 준비했다. 냄비에 누룽지를 넣고 누룽지 죽을 끓였다. 함께 먹고 있던 첫째가 말했다.


"엄마가 아프다니.. 엉덩이로 연필도 부숴버렸던 엄마잖아."


"하하하.."


그래 맞다. 예전에 아이들이 바닥에 그냥 놔둔 연필꽂이를 보지 못하고 내가 앉아버린 탓에 꽂혀있던 연필이 반으로 부러진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연필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내 엉덩이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불행중다행이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도 신이 준 선물이라고나 할까. 녀석이 그 일로 나를 엄청 강인하게 생각했나 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에는 휴일에도 진료를 해주는 병원이 하나 있다. 마트 안에 위치한 병원이라 마트가 쉬지 않는 한 일 년 내내 무휴이다. 오늘도 역시나 대기자가 많았다. 우리도 번호표를 뽑고 앉아서 기다렸다. 온몸은 쑤시고 추워서 저절로 몸이 베베 꼬였다. 세 시간 같은 삼십 분이 흘러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에고. 어머님, 아버님 두 분 모두 코로나 양성이시네요."


처음이었다. 작년 봄에 둘째가 코로나 양성이었을 때도 우리 셋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코로나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슈퍼항체가 이런 걸까 하는 우쭐함도 있었. 그렇다면 우리는 몇 년 동안 어떻게 그 코로나를 피했던 걸까? 이 정도의 운이라면 로또가 한 번쯤은 될 만도 한데 말이다.



오늘은 3월 1일이다. 삼일절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더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의 남편과 처음 만난 날이 바로 20년 전 오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남편과 내가 만난 지가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했고 결혼과 양육에 이어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런 뜻깊은 오늘, 나는 20년 기념선물을 받았다.



로.. 코로나 확진과 일주일간의 격리통보.. 아. 이것도 어찌 보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주일 동안 남편과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은 거 맞겠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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