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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26. 2023

먹는 것으로 봄을 느끼다

그래도 돼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열면 내 발걸음보다도 빠른 찬바람이 온 집을 휘감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창문을 열어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포근하고 여유로웠다. 그래. 봄이다. 봄이 한 발짝 다가옴이 느껴진다. 겨울잠을 자던 모든 동물들도 꺠어난다는 봄이다. 나도 이제 꺠어날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노라 이제는 꺠어나라고 할 것만 같다. 날카롭고 매서운 칼바람이 아닌 부드럽고 느긋한 그런 공기와 냄새. 그리고 따사로움.. 가장 먼저 입맛이 깨어났을까. 그 느긋함과 부드러움에 먹고 싶은 음식도 바뀌는 것 같다. 겨울 동안 먹었던 묵직하고 두툼한 고깃덩어리와 밀가루가 질린다. 봄이 되면 붕어빵 아주머니 께서 슬슬 마무리에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 이젠 그 따뜻하고 달달한 빵보다는 신선하고 상큼한 과일과 채소가 먹고 싶어 지는 시기가 니겠는가. 



봄의 발걸음에 질세라 트에는 봄동과 냉이, 달래가 나왔다. 시장에 펼쳐지는 채소들처럼 내 입맛도 그것들을 따라 움직인다. 봄동도 사고 냉이도 샀다. 봄동은 한 잎 한 잎 뜯어서 먹기 좋게 썰어 겉절이를 해서 먹었다. 아삭아삭하고 상큼한 맛이 봄을 통째로 씹어 먹는 것 같다. 냉이는 살짝 데쳐서 양념장에 무쳐서 먹었다. 내가 덜 삶아서인지 조금 질기긴 했지만 냉이만의 그 향은 정말 황홀하기까지 하다. 아. 어쩌면 겨울의 그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려면 그을지도 모르겠다. 보드랍고 연약해서는 금세 얼어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최대한 지면에 붙어 자라야 했고, 그 잎사귀들 마저도 단단해야만 추운 겨울을 이겨냈을 테다.



나물을 아작아작 씹어먹고 나니 더 상큼한 무언가가 먹고 싶어 졌다. 봄을 먹을거리로 느끼고 있는 나라니.. 그래도 봄은 봄이다. 눈으로 느낄 수 없다면 온몸으로 느끼면 그만이다. 겨우내 찌워둔 살도 털어낼 겸 요거트를 주문했다. 그래 요거트. 그 좋은 먹거리를 왜 잊고 살았을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렇게 주야장천 만들어대던 요거트 아닌가.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즐겨 먹던 그 요거트를 다시 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야 그 무거운 식재료를 벗어던질 시기가 왔다. 가뜩이나 넌덜머리가 났던 반복적인 생활에서 먹을거리만 달라져도 하루가 이렇게 기대가 되는 건 왜일까. 뭐니 뭐니 해도 '의. 식. 주'중에 단연 1등은 '식'인가 보다.



무가당요에 달달한 그래놀라와 견과류, 과일 조각을 올려주면 그야말로 꿀맛 같다. 그럴 거면 무가당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어쨌거나 이 조합은 봄을 느끼기에도 그만이다. 이제 한 달 정도만 지나면 벚꽃이 만발하겠지? 봄은 항상 잊지 않고 찾아와 줬으니까. 평생을 겨울일 것 같아도 어김없이 때가 되면 봄은 온다.  그런 봄을 나는 느낀다. 만발하는 벚꽃을 볼 수도 없고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 바람결에 날아오는 봄내음을 느낀다. 따사로운 햇살과 너그러운 바람결, 그리고 입안 한가득 머금은 봄나물들이 이제 봄이 왔노라 속삭여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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