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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Feb 23. 2023

내 눈이 언제부터 세 개였지?!

나도 몰랐던 사실

오늘은 방과 후가 두 개나 있는 날이다. 봄방학이지만 방과 후는 빠지지 않고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정말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정신건강에도 썩 좋지 않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아이들을 준비시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바빴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바빠도 되는데 나는 아이들이 있을 때 집안일을 한다. 그냥 그렇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는 그냥 혼자 멍하게 있는 것도 좋고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있을 때 집안일을 해야만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더욱 바빠야 했다. 왜냐면 나만의 시간이 오늘은 두 배이니까.



누룽지를 끓여서 아이들과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그러고는 후다닥 설거지를 끝내고 무 하나를 꺼내서 깍둑깍둑 썰었다. 찹쌀가루로 풀을 쑤고 고춧가루와 새우젓, 액젓, 마늘을 개어서 김치양념을 만들어 소금에 절인 무에 버무려주었다. 정말 간단하면서 격까지 착한 푸짐한 반찬 하나가 완성되었다. 깍두기는 어릴 때 엄마가 정말 많이 해준 반찬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집을 나갈 때 엄마의 월급까지도 다 가불해 간 탓에 몇 날 며칠을 깍두기로 끼니를 해결한 적이 있었다. 이쯤 되면 질릴 만도 하지만 나는 깍두기가 좋다.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참 좋다.



깍두기


무 두 개 중에 하나는 깍두기를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저녁에 먹을 소고기 뭇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소고기 뭇국은 요즘 나의 최애 메뉴이다. 다른 반찬을 거하게 만들지 않아도 소고기 뭇국과 김치 하나면 풍족하다는 생각이다. 가족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국을 끓이려면 소고기를 사러 가야 했다. 아이들이 씻고 준비하는 동안 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엄마랑 같이 나가자. 엄마 고기 사러 가려고."


"좋아. 그럼 학교까지 데려다주라."


"그건 안되고. 하하. 관리실 앞에서 빠빠이 하자."



사실 학교는 10분 거리에 있고 정육점은 관리실 바로 옆 상가에 있다. 알다시피 학교까지의 거리는 나에게 모험과 같다. 심지어 아이들을 데려다준다기보다는 아이들이 나를 데리고 간다가 맞다. 더군다나 나는 혼자 그 길을 돌아와야 하는데 아침부터 진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아이들도 그냥 던진 말이라 서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요즘 부쩍 눈부심이 심하다. 오랜만에 나간 아침이라 이렇게나 햇살이 눈부실줄은 몰랐다. 온 세상이 참으로 밝고 뿌옇고 희미했다. 그래도 몇 년을 오가던 길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잘도 걸어갔다. 사실 관리실에서 정육점 까지는 30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9년을 걷던 길이라 익숙해서 안 보고도 걸을 수는 있다. 정육점에 도착해서 고기를 사고 잔돈을 받아야 하는데 멍하게 있었다. 이거야 뭐 한두 번이 아니니 나는 이제 그렇게 민망하진 않다. 오히려 돈을 내민 아주머니께서 민망해하셨다. 돈을 주는데 받지를 않으니 민망할 만도 하다.


"잔돈 안 받으세요?"


"아. 하하. 제가 눈이 나빠서.."


"에고. 눈이 많이 나쁘시구나."


마음속으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하며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왔다. 그래 괜찮다. 괜찮아야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 말이다. 그냥 잊고 살자.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더 많아질 것이니 그때마다 마음 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유독 눈에 관련한 실수는 마음에 담아두는 것 같다. 남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이면 나도 웃고 말지만 눈 때문에 하는 실수는 너그럽지 못하다. 상대방은 금세 까먹는 일임에도 나 혼자 그걸 가지고 집까지 들어오는 게 문제이다. 오늘은 그래도 눈이 나쁘다는 말까지 한걸 보니 내 마음이 많이 열린 것 같기도 하다.



정육점에 갈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예전에 아이들이 코로나로 학교와 유치원을 가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매일같이 집에서 씨름을 하다 보면 무엇이든 함께 놀거리가 많아야 했다. 그때만 해도 이것저것 만들기 용품을 주문해서 함께 만들기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색종이 접기이다. 단순하면서도 시간 때우기에 아주 그만이다. 물론 나야 책을 보고 접을 수가 없으니 옆에서 잘한다고 북돋아주거나 물고기 정도만 접으며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만 주는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마저도 조금 하다가 힘들면 집안일을 핑계로 슬쩍 발을 빼 했다.



그날도 아이들과 즐겁게, 아니 힘들게 종이접기를 하다가 바쁜척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맞다. 엄마 고기 사 올게. 저녁거리가 없네. 놀고 있어."


하고는 도망치듯이 얼른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바깥공기는 상쾌하고 좋았다. 기분 좋게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고 계산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옷도 갈아입고 이것저것 하다가 우연히 내 앞머리를 만졌는데 이마에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등골이 오싹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을 정도로 등이 서늘해져 왔다.



나는 분명 기억했다. 조금 전까지 아이들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종이접기를 했다는 것을.. 심지어 그 작품들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위해 눈알 스티커까지 사줬다는 사실도.. 동시에 믿고 싶지 않은 기억도 함께 스쳐 지났다. 아까 첫째가 장난으로 내이마에 붙인 엄지손톱만 한 그 녀석이 떠올랐다. 이마에 붙은 그놈을 떼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놈이 맞았다. 동글동글 하고 영롱한 광택을 뽐내던 검은 자가 뱅글뱅글 돌아다니는 그 입체 눈알 스티커란 말이다.



그것도 이마 한가운데에 그놈을 붙이고 나는 눈이 세 개인 채로 정육점에 간 것이다. 가뜩이나 어설픈 내가 눈알까지 붙이고 돌아다녔으니 정상으로는 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무 내색하지 않았던 아주머니께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눈알 스티커를 붙인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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