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103일.
비행기가 아침 8시 비행기였다.
공항에 일찍 간다는 핑계로 친구와 밤을 새우고 6시에 도착했다.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여권 영문과 티켓 영문이 다른 것이다.
비행기 트랜스퍼가 안될 수도 있었고 공항에서 입국이 안될 수도 있었다.
수정된 이름으로 예매를 다시 하든 그냥 출발하든 이었다.
1시간 반 동안의 여행사 통화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에라이, 질러버린 거다.
보안검색대에서 어떻게 영어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바보같이 스페인 간다 해놓고 가는 티켓도 없다, 솔직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왜 통과된 거지?
어쨌든,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 들어섰다.
첫 유럽 여행, 20kg짜리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그렇게 무계획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런던을 거쳐 사우스햄튼에 있다가 리스본을 갔다.
스페인으로 곧장 가려다가 리스본행 비행기와 마드리드행 야간열차가 더 싸길래 질렀다.
내 평생 잘한 지름 중 하나다.
리스본은 그냥 예뻤고, 좋았다. 거리도 좋았고 사람들도 좋았다.
성 조르제 캐슬에서의 일몰은 가히 최고였다.
그러다 암스테르담을 갔다.
사실 네덜란드를 추천하던 사람들은 없었다, 더군다나 암스테르담은.
하지만 내 기억에서 암스테르담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냥 선명하다.
비단 하이네켄 때문만은 아닐 거다. 고흐도, '안녕, 헤이즐'도 메인은 아니었다.
떠나기 전날, 빛 축제한다는 것도 모르고 도착한 어느 다리에서의 풍경.
인상적이었고, 결국 호스텔에서 하룻밤을 더 질렀다.
프라하를 지나 비엔나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동유럽을 지났다.
다른 곳들과 달리 꽤나 한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동유럽이었고 그다음 그리스를 갔다.
불가리아에서 터키를 갈 수 있었지만 그리스에서 페리를 타고 싶었다.
겨울이라 페리가 운항하는지도 몰랐지만 무작정 아테네행 야간 버스를 질렀다.
그리고 결국 경유하던 사모스섬에서 페리가 없다는 걸 알고 12시간의 기다림 끝에 히아스섬으로 갔다.
하지만 덕분에 기분 좋은 만남을 가졌다,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만남이었다.
그 12시간 동안 여유를 느꼈고 비 오는 그리스 섬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그다음은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르는 3주 동안 터키어도 배우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한국인을 엄청나게 많이 만났다. 정말 많이 만났다. 꽃누나의 영향이었다.
원래는 한 호스텔에서 계속 머무를까 하다가 1주일 단위로 옮겼다.
나름 탁월한 선택이었다. 1박에 7유로 라길래 지른 마지막 호스텔.
그런데 도착하니, 남녀 혼성 15인실이 아니었고 1박 하고 나니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줬다.
그러고는 뒤늦게 합류한 인도인 그룹 덕분에 배불리 먹기도.
2015년 설날을 앞두고 이스탄불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날. 눈이 미친 듯이 왔었다.
그 전까지도 너무나 멀쩡하던 하늘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눈 덮인 블루모스크를 보여주었다.
2015년 2월. 두바이를 잠시 거쳐 도착한 인천 국제공항에서 나의 배낭은 나와 함께하지 못했다.
나와 다른 비행기를 탄 거다. 결국 다음날 도착했다.
배낭이 어지간히도 여행을 끝내기 싫었나 보다, 나처럼.
... 스물일곱. 첫 유럽 배낭여행. 103일.
내 인생 최초이자 최장 여행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