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목욕탕이었다가 문구점이었다가

by 안우진

우리 집은 목욕탕을 지나 문구점을 하다가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현재의 본가로 이사를 왔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산등성이, 길 안쪽 깊이 들어가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채의 오래된 주택이 있었고, 난간도 없는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좀 더 오르면 우리 집이 나왔다. 우리가 이사 오고 오래된 아빠의 옛날 집 뒤로 새로 큰 고동색 벽돌집을 지을 때까지 우리 가족 7명은 그 좁고 지저분한 기와집에 뭉쳐 살았다.


이혼을 결심한 후 엄마는 그 집을 지은 걸 후회한다고 했다. 인생의 가장 큰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다 지어진 집은 꽤나 크고 멋져서 어렸을 때의 나는 친구들을 늘 집에 데려오고 싶어 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어두컴컴한 밤 집에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음침해서 늘 나를 고사리 같은 발로 있는 힘껏 달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귀가길에 마중을 나왔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같은 동네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에 할아버지의 작은 2층짜리 상가건물이 있었는데, 내가 중학생이던 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갑자기 그곳으로 가서 따로 살겠다며 집을 나가셨다. 얼마 안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다시 그 고동색 벽돌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상가 1층을 누가 가게로 쓰는 게 아니라 집으로 살겠다고 하니까 멍청하게 그 벽을 패널로 다 막아버리고 방으로 만든 거야. 그 사람이 나가버리니까 그걸 상가로 다시 쓸 수 도 없고.. 너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기서 살겠다고 나간 거지. 그렇게 멍청했어. 너네 아빠네 식구들이. 그 많던 재산도 너네 할아버지가 이래저래 사업한다고 다 날려버린 거야. 그 집만 빼고."


엄마는 아빠와 대화를 안 하게 된 시점부터, 어른들의 사정이란 것을 나에게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상태로 10년을 더 같은 집에서 사셨다. 대화가 없으니 싸우는 일도 사라졌고, 나는 그 일촉즉발의 적막함 속에서 그것을 안정이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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