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남녀차별이 심했다. 밥상이 차려지면 습관처럼 그 앙상하고 검붉은 팔로 모든 반찬들을 아빠와 오빠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릇들은 서로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고, 국물이 있는 반찬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튀었다. 할머니는 물건을 쓰고 놓을 때 가만히 내려놓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늘 지저분했다. 엄마가 오래 써서 낡고 깨진 그릇들을 버리려고 몰래 담아서 숨겨놓아도 할머니는 무슨 힘이 있는지 기어코 그것을 전부 꺼내왔다. 얼마 전엔 엄마가 여기저기 칼자국이 그득한 플라스틱 도마를 나에게 쥐어주며 자취방에 갈 때 몰래 버리라고 했다.
아빠도 오빠도 할머니가 도통 말을 들으려 하질 않으니 항상 격앙된 목소리로 맞받아치기 일쑤였다. 내가 집을 나온 이후로 할머니에게 늘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한 것도 그것 때문에 할머니가 조금 안쓰러워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에서 가장 먼저 도망쳐 나온 것은 나였다.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 집에서 독립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같은 지역의 국립대에 들어갔다. 딸아이가 4년제 대학에 가는 게 맘에 안 들었는지 그때부터 할 말 못할 말 쏟아내기 바쁘셨다. 2학년이 되고 5년 제로 전향하며 밤샘 과제에 시달렸을 때는 더할 나위 없었다. 새벽에 귀가해 대충 씻고 방에 누우면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내 방에 들어왔다. 새벽 두 시든, 다섯 시든 똑같았다. 목청은 얼마나 큰 지 새벽마다 온 가족을 깨웠고, 문을 잠가 놓았을 땐 몇 번인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가 이내 발걸음이 멀어져 갔다. 할 말을 하기 위해 그저 나를 기다린 것이 처음엔 우스웠다.
"매일 새벽마다 네가 타고 오는 택시비가 얼마야?"
그 시달림이 계속되자 나는 택시를 타지 않고 새벽 첫 차를 타고 귀가했다. 하지만 그땐 잘 몰랐다. 내가 그런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할머니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새벽까지 공부하는 학교라니 나는 그런 거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
"네가 쓰고 있는 돈이 다 너희 아빠 돈이야."
"어디서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다 들어오니?"
이성의 끈이 끊어졌을 땐, 나는 이미 붉어진 눈으로 아빠에게 내 돈으로라도 독립하겠다는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있었고, 그 편지를 방에 두고 어김없이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갔다. 독립을 허락하지 않던 아빠도 그 편지를 보고는 허락하지 않을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기에 난 그때 조금 들떴던 것 같다.
「아빠가 미안하다. 삶이라는 게 참 어렵구나.」
아빠에게 그런 문자를 받았을 땐, 이상하게 눈물이 흘러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가 혼자 울음을 삼켰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혈육에게서 듣는 미안하다는 말이 그토록 슬프고 날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대학 4학년 때 독립했고, 졸업 후 취업을 한 지금까지 줄 곧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혼자 사는 것이 어색한 것도 잠시,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혼자가 더 편한 어른이 되었다. 본가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들렀고, 여전히 대화 없는 집이었지만 그 때문에 큰 일은 없었기에 내 걱정은 조금씩 줄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