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슬픈 사람

by 안우진

토요일 아침 부은 얼굴을 대충 씻고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저녁엔 전화를 받지 않았던 아빠가 몇 번에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았다. '어.' 하는 들릴 듯 말듯한 아빠의 목소리. 누가 들어도 무슨 일이 있는 듯한 어조로. 내가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본가로 갈 것이니 이야기 좀 하자는 나의 말에 알겠다고는 매가리 없이 전화가 팍 끊겼다. 주말에 본가에 가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날만은 흐린 날씨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나는 그날도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0년 결혼 생활했으면 무조건 반반이야. 내가 소송하면 너희 아빤 나한테 재산의 절반을 줘야 하는데, 내가 얌전히 1억 5천만 달라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어야지. 한 푼도 못주겠다니 멍청하게."



그렇게 말하던 엄마는 없는 사람들끼리 싸워 돈 날려서 뭐하냐며 아빠를 만나 합의 이혼할 수 있게 설득하라고 했다. 난 늘 그런 역할이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한 집에서 대화 없이 살았던 부모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나한테 파랑새가 되라고 했다. 하지만 집에 언제 들어오는지, 식사를 하라던지 그런 말을 전하던 내가 이젠 부모님의 이혼을 중재해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두 사람의 문제니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할머니 문제로 가장 먼저 이 집을 나왔던 나로서는 엄마의 그간의 고통을 외면해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 일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집이었지만 그 이상한 정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본가에 차를 대고 전화로 아빠를 부른 뒤 함께 근처 카페로 향했다. 원래도 말없는 사람이었지만 간단한 안부인사조차 없었다. 아빠는 늘 어렵다. 소화도 잘 안 되는 그 작고 마른 몸뚱이는 그날따라 유난히 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대충 걸친 옷이 꼭 나뭇가지에 말려놓은 거적때기 같다. 주문한 차가 나오고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냐며 아빠에게 물었다.



"이혼해달라는데 그럼 해줘야겠지.. 하지만 돈은 못줘. 내가 없는 사람한테 주는 것도 아니고, 몇억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내가 돈을 줘야 한다고? 너네 엄마는 옛날부터.."



아빠가 내 앞에서 엄마를 험담한다. 엄마에게 큰돈이 있다는 것도 단지 그의 상상일 뿐이다. 바보 같은 우리 아빠,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돈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텐데.. 그저 피해망상에 젖어있는 그가 심지어는 애처로워 보였다. 아빠와 대화하다 보면 말을 하기 싫어진다. 아빠는 그렇듯 자식들이 서른이 넘어가도록 가족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다. 난 아빠를 사랑했지만 할머니나 고모를 제하더라도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자신이 기가 센 여자를 잘못 만나 이 사달이 난 거라고 생각하는 아빠를 나는 그저 측은하게 바라 볼뿐이었다.



"아빠, 난 20년 넘게 아빠 딸로 살았지만,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법대를 나왔지만 여러 일을 전전긍긍하다가 지금은 환경미화원을 하고 있는 우리 아빠. 나는 아빠의 전공에 대해서도, 직업에 대해서도 가족 구성원 그 누구에게서도 직접적으로 들은 적이 없다. 다만 부엌 의자에 걸려있는 아빠의 작업복을 보고 알아챘을 뿐이었다. 저 말을 뱉었을 때, 중학교 가정방문 때가 생각났다. 선생님께 아빠의 직업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우리 할머니. 난 그때부터 뭔가를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우리 아빠가 자신의 열악한 환경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그런 부모님을 숨기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당당한 사람이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빠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난 아직까지도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아빠의 직업을 말한 적이 없고, 부모님 사이가 안 좋다는 것도 말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 보잘것없는 배경을 숨기기에 바쁜 사람이니까. 또한 나는 우유부단하고 고집 세고 시기 질투가 심하고 이기적이다. 다만 아닌 척 잘 포장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야기가 끝났을 땐 비가 왔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나의 말을 뒤로 한채 아빠는 인사도 없이 앙상한 발로 힘없이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난 나와 너무 닮은 아빠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 우울해지지 않으려 빗소리를 묻어버릴 수 있는 신나는 음악을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틀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난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잠이 들었지만, 새벽 어느 순간 깨어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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