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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Mar 03. 2024

나를 존중하는 마음

#나다움 #자기인식 #자기이해 #자아존중감

은애 님에게


오랜만에 회사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네요. 퇴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일한 부서가 아무래도 은애 님과 함께 있던 곳이기에 편지에서 말하는 일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이 지닌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일. 생각해 보면, 저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일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냐에 따라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공유합니다. 


소노 아야코 산문집 『약간의 거리를 둔다』

"내가 기쁨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일에서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완성도를 갖춰놓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성공적인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성공했느냐 아니냐로 쉬이 가르는 시선을 피곤하게 생각하는 터라 인생이라는 단어 앞에 '성공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이와 달리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말하는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은 사회적˙경제적인 것과 거리가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든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든가 둘 중에 어느 쪽에 있든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의 잣대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시선에 날이 선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나와 은애 님은 꽤 성공적인 인생에 속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하하)


사실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면 뭐 어떤가요? 삶이란 본래 오르내림이 있고 큰 성취로 기뻐하다가도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저,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을 보는 관점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참고하는 정도면 괜찮다고 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에 있으니까요. 그가 바로 나 자신일 때, 삶은 윤택해지는 법이죠. 은애 님이 편지에 쓴 수많은 단어 중 '나다움'이 바로 그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해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봄을 맞이하며 어떤 주제로 미술치료를 해볼까 하던 찰나, '자아존중감'을 주제로 삼았어요. 우리가 흔히 자존감이라고 줄여서 말하는 이 자아존중감은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뜻해요.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마음, 어떤 성과든 이뤄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죠. 이 마음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은애 님이 이야기한 '나다움'에 있습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 경험에서 거리를 두게 하거든요. 더불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리고 상호 간 존중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힘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미술치료에서도 자존감을 다룰 때, 자기인식과 자기이해를 목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돼요. 바로,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이죠.


'자기인식' 혹은 '자기이해'라는 단어가 무겁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를 아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호기심이 많아 여행을 좋아하고 낯선 이들과 하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에요. 그러나, 일상에서는 타인과 맺는 관계에서 안전 영역에 대한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라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는 활달하고 외향적인데 내가 생각하는 나는 자기 방어적인 면이 있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인지하는 나에서 부정적인 면을 걸러서 나를 구성하고 싶어 해요. 아무래도 당연한 심리가 작용한 것이겠죠. 어느 누가 좋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겠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족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마주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자존감으로 이 문장을 다시 설명하자면, 부정적인 나의 모습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해요. 


"아, 그렇구나. 나는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구나. 섣불리 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내 안에 스스로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내가 나를 알아줄 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의 간극은 점차 줄어드는 계기가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활발하게 구는 모습은 점차 줄어들겠죠. 아마, 그전보다 내면의 나를 돌보는데 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요. 이렇게 마음 근육이 다져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칠까 봐 인간관계에서 선을 지키려 애쓰는 마음을 스스로 존중해 주는 것을 시작으로요.


나를 나무로 표현한다면 나는 어떤 잎, 꽃, 열매를 지니고 있을까?


은애 님의 편지를 읽으며, 다른 사람들이 지닌 해시태그를 찾아주는 은애 님은 어떤 해시태그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일까, 궁금해졌어요. 다음 편지에서 은애 님의 나다움을 읽어보고 싶어요. 그럼, 편지 기다릴게요.



2024. 02. 29.

2월을 마지막 날,

은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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