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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Mar 10. 2024

저도 모르게 물음표가 자꾸 생겨요

아이들보다 '왜?'를 더 많이 하는 엄마

은영님에게.


 가끔씩 지난날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 이번에 은영님이 보내준 편지를 읽고선 '와... 나 편지 쓰길 너무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밑줄 긋고 저장해두고 싶은 문장이 어찌나 많던지. 함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은영님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부터 자기 생각을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런 관점에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기 생각'과  거리가 먼 이야기도 많더라고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연예인 가십 등... 가벼운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도 있지만 저는 누군가의 고유함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아요. 자기만의 순수한 즐거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분야 자체에 흥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사람마다 결과나 과시와 무관한 순수한 행복감을 주는 게 무엇인지 그걸 탐구하는 게 저에게는 기쁨인가 봐요.


 지난 편지에서 저의 해시태그에 대해 물었죠? #애둘엄마 #자아탐색덕후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왜?'가많은사람 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나다움을 나타내는 단어인 것 같아요.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왜?'더라고요. 어떨 땐 아이들보다 더 많이 묻는 것 같아요.


이전에 정리해 봤던 저의 해시태그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평소에도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질문이 뻗어나가는 편이에요. 일을 할 때는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야 의욕이 생겨요. 지금 부서에 오기 전, 제품에 들어가는 작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때에도 '이 기능을 왜 개발해야 하지?'라고 시작된 질문이 '회사는 이 사업을 왜 하는 걸까?'로 뻗어나갔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이 많아서 답답할 때가 많지만, 이걸 사람에 대입해서 적용해 보면 누군가의 서사를 이해하고 그 사람의 고유함을 발견하는 데는 너무 좋더라고요.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셔츠를 입을 때 윗 단추를 잘못 끼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나머지 아래 단추들이라도 어떻게든 맞춰보려는 사람이 있고, 아예 새롭게 끼워서 또 다른 패션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는 첫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우는 데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랄까요. '옷이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첫 단추가 문제이니깐요. 더 이상 '왜?'가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 근본적인 것까지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때로는 적당히 묻어두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걸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게 나다운 모습이자 삶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감각을 갖게 해주는 중요한 행위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에게는 꼭 스스로 묻고 답할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이것도 해시태그에 추가해 둬야겠어요. #고독이필요한사람


 이번 주에 저희 집에는 꽤 큰 변화가 있었어요.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거든요. 학부모가 되는 건 저도 처음인지라 어떤 변화가 얼마나 있을까 가늠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겪고 보니 아이가 느끼는 변화가 꽤 크더라고요. 그리고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를 주고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저의 역할도 꽤 크고요. 하루아침에 넓어진 교실과 다양한 친구들 속에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율을 맞닥뜨리다 보니 긴장도 높아지고 어린이집이 그립기도 하고 그런가 봐요. 울고 힘들어하는 아이 옆에서 말 몇 마디 건네고 등 떠밀어 학교로 들여보내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짠했답니다.


아이도, 저도 '처음'의 순간을 맞이했답니다.


 어느 날 밤에는 학교에 가면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울 것 같다고 아이가 걱정하길래 이렇게 말해줬어요.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게 맞아. 배우는 과정이라서 그래. 잘하고 있어!

  근데, 열 번만 지나면 분명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그러자 아이는 그래도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어서 배우는 과정이 지나고 빨리 괜찮아지면 좋겠다며 울더라고요. 아이를 지켜보는 제 마음도 덩달아 울컥해졌어요. 요즘 제 마음도 사실 아이의 마음과 비슷하거든요. 회사에서도 안 해 본 것을 해내느라 괴롭기도 하고, 성장통을 겪는 아이를 지켜보는 어려움도 있어서 안팎으로 견뎌내야 하는 시기거든요. '분명 나아질 거니까 견디자'는 말을 아이에게 해주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어요. 살다 보면 견디는 것이 전부인 시기도 있잖아요. 겨울을 기다려 봄을 맞이하듯이 기다림이 필요한 때가 있는데, 저에게는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아요.

 요즘의 은영님은 견디고 있는 무언가가 있나요? 오늘 편지를 쓰다 보니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덕에 지금의 견뎌야만 하는 시간들을 잘 보낼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하네요. 고마워요, 은영님!



- 24년 3월 10일 일요일 밤


주기적으로 손 편지를 쓰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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