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영 Sep 05. 2024

Smiling & Trying

Day 2.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몇 시간이나 잤을까?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다녀와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론세스바예스는 무척 쌀쌀했고 나는 온기가 필요했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며 지난밤과 다른 목소리로 아픈 다리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회복을 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평소 체력이 좋아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른바 '근'수저다. 아무래도 내가 내구성이 좋은 건 엄마의 덕이 분명하다.


어쨌든 목적지인 수비리까지 배낭 하나를 부치기로 했다. 다행히 관절이 아픈 것이 아니라 근육통뿐이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큰 내 배낭에 무거운 짐을 모두 옮겨 담고 나도 가볍게 걷기로 했다. 내 배낭에 엄마의 짐을 쓸어 담고 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유심히 보던 브라이언이 감동을 받았다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이건 단지 7유로의 편의일 뿐이라고 그에게 사실을 정정해 주었다. 엄마의 짐을 대신 지려고 하는구나, 하며 감격해했던 그는 나와 함께 크게 웃었다.




비가 오는 아침
공기의 냄새가 짙어지는 날씨 속에서 걸은 오전


브라이언을 다시 만난 건 걷기 시작한 지 두 시간가량 흘렀을 즈음이었다. 지난밤부터 오던 비가 멎고 해가 들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우비를 배낭에 넣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건넨 브라이언은 손수 우리 모녀의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나섰다.


"데이비드는?"


아일랜드에서 함께 온 친구 데이비드 없이 혼자 걷고 있는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그가 전화를 하며 느리게 걷는 터라 먼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별안간 브라이언은 지난밤의 일을 사과했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서 엄마와 나는 브라이언과 데이비드의 옆 침대를 묵었다. 배정받은 침대의 번호를 찾아 엄마에게 여기서 자면 된다고 일러주는데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엄마는 말했다.


"은영아, 여기 남자들이 있다."


그 말에 당황한 건 나였다. 분명 엄마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해 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례길의 알베르게에서 묵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과 우르르한데 모여 자야 한다고. 아, 근데 내가 '남자도' 같이 자야 한다는 건 설명을 안 했던가…? 나 역시 혼란스러웠지만 우선 엄마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심상치 않게 지켜본 이가 바로 브라이언이었다. 그는 바닥에 어질러둔 자기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가 나누는 심각한 대화의 이유가 자기가 배낭에서 막 꺼내 아무렇게나 둔 물건에 있다고 생각한 듯이.


그 일을 다시 언급하며 사과하는 이 젠틀맨에게 나는 오해를 풀어줘야 했다. 엄마가 당황한 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고. 단지, 알베르게에 남자들과 함께 잘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놀란 거라고 말이다. 내 설명을 들은 브라이언은 나와 함께 웃으며 그래도 어머니가 대단하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불편함 투성인 여행을 엄마 나이에 한다는 게……."


나는 한껏 가벼워진 몸으로 앞서 걷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까미노 표지석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마음

"그나저나 너 영어를 정말 잘한다. 훌륭한데?"


브라이언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사실, 나는 영어를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한국인 치고 스몰토크에 강하다는 것과 영어를 못해도 아무렇게 일단 내뱉는 성격이 조화를 이뤄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브라이언과 나는 관심사가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나의 까미노 여정에 관해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근데 난 영어를 잘하지 않아. 게다가 지금은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런데 12년 전에 내가 까미노를 처음 걸었을 때는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까미노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 라이자에게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말했어."

"오, 그 사람이 네게 영어를 가르쳐줬구나?"

"아니, 라이자가 가르쳐준 건 영어가 아니라 태도였어. 라이자가 그랬거든. 딱 두 가지만 기억하라고. Smiling & Trying! 웃으며 시도하면 된다고 말이야."

"진짜 멋지다. 맞는 말이야. Smiling & Trying!"

"응, 그 후로 나는 그 말을 종종 떠올리곤 해. 내가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할 때마다 말이지. 지금도 봐. 나 그냥 막 이야기하잖아. 너는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말해줄지 몰라도 내가 지금 엉망으로 영어를 쓰고 있다는 것쯤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내 부연 설명에도 브라이언은 여전히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실랑이를 하며 나는 영어 듣기 평가를 이어갔다.


"어쨌든 이게 내가 까미노를 좋아하는 이유야. 나는 까미노에서 삶의 태도를 배웠어. 까미노를 걷기 전과 그 후의 나는 정말 다르거든."




수비리 마을 입구의 모습 (좌) 2012년 12월, (우) 2024년 6월
수비리의 개울가에서 지친 다리의 피로를 푸는 순례자들


수비리에 도착해 나는 눈에 익은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예약 정보를 확인하고서 나와 엄마를 펜션으로 안내하던 마리아에게 이곳을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환히 웃으며 그때는 알베르게에 묵었겠구나, 하며 말했다. 이 숙소는 알베르게와 펜션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마리아의 말대로 그때는 혼자 여행을 온 터라 피레네를 함께 넘은 이들과 어울려 알베르게에 묵었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걷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펜션에 도착한 우리에게 마리아는 숙소 시설을 안내해 주었다. 대게 스페인의 까미노 위에 있는 펜션은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쓰는 구조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엄마는 '문'이 있는 방에 만족해했다. 문도 없이 남자들과 한 공간에서 잠을 자야 했던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12년 전 한국인 모녀에게 초대받았던 수비리의 펜션

짐을 간단히 풀어놓고 나는 홀로 주방으로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모녀를 떠올렸다. 바로, 첫 번째 까미노에서 만났던 한국인 모녀를 말이다. 펜션에 머물던 그들은 미역국을 끓였으니 나더러 먹으러 오라며 챙겨주었다. 미역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까미노를 시작하며 입병이 난 터라 식사를 여간 시원치 않게 하던 내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 한국에 돌아오면 연락을 하라며 아주머니께서 손수 연락처까지 적어주셨는데……. 그걸 여태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연락 한 번 드리지 못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의 나이가 지금의 엄마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엄마와 오겠다고 결심한 데는 그들이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엄마와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섰다. 마을 초입에 있던 개울가에 발을 담가보았다. 차가운 기운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까미노에서 배운 첫 번째 스페인어가 생각이 났다. 다름 아닌 '프리오'(Frío, '춥다' 혹은 '차갑다'의 스페인어). 나는 종종 그날의 걷기를 마치면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녔는데 동네 세뇨라(Señora, 여성을 존칭 하여 부르는 스페인어)들은 그때마다 염려의 얼굴로 나를 보며 춥지 않냐고 묻곤 했다. 그때 들은 스페인 단어가 바로 '쁘리오'이다. 한겨울에 현지에서 배울만한 스페인어로 알맞은 셈이다.


"무초 프리오!"(Mucho frío, '매우 차갑다'의 스페인어)


그날의 기억을 되뇌며 나만 들릴 수 있도록 나지막이 말했다.


¡Mucho frío!



Day 2. JUN 11, 2024

Roncesvalles to Zubiri, 21.3km

이전 04화 자신감과 오만함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