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구팔구 팔레트 May 31. 2020

이런다고 세상이 바뀐다

그래 나부터 바뀌었으니까

젬마, 혹시 이런 적 있어? 나는 어떤 생각이 들면 그걸 꼭 말하거나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려서 인지 참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해. 그래서 때로는 나의 의견과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도 늘 감수해야 하는 부분일거야. 그런데도 정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들이 있어.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거야. "이런다고 바뀔 것 같죠? 안바껴요." 이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거나 속상하기 보다 화가 나. 왜 나는 화가 나는 걸까?


사실, 이런다고 바뀌지 않은 것보다 바뀐 것이 더 많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야. 작년 초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보게 되었어. <여성의 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였는데 작품도 좋았지만 전시장 한 켠에 쓰여 있던 이런 문장이 있었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뀐다.' 소수의 입장을 세상에 펼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생각을 모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야. 정말 그렇지 않니? 예전에는 어림도 없던 것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니까.


상사의 폭력적인 언행. 그때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내뱉는 것 같더니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겠냐는 내 말에 '그런다고 안바껴요.'하며 쓴웃음을 짓던 그녀. 그녀는 정말 괜찮은 걸까? 나는 왜이리도 화가 나는 걸까. 사실 시작을 해보지 않아서 인데 어떤 방법이라도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이 세상엔 분명 존재하는 것 아니니?

몇년 전,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 말에 어떤 말을 들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이 알고 있는 또다른 피해자가 이겨낸 사례들을 말해주던 너. 내게 용기의 말을 전하던 너. 수많이 많은 이들이 그저 판단만 하며 내게 꽂던 말들로 참 힘들었는데 그때 너의 그 진심어린 말이 내게는 유일했었어. 그때 너도 이런다고 바뀌는 것이 있다는 걸 말해주려던 것은 아니었니? 사실 그래, 나부터 바뀌었으니까. 내가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 세상의 시선 역시 두려웠지만 나는 알려야 했어. 왜냐면 피해자인 내가 행동을 해야 변화가 시작되니까. 사건이 마무리 될 즈음엔 누군가 와서 내게 그런 말을 했지. "해나씨 덕분에 '이렇게 할 수 있구나'를 알았어요." 라고 말이야. 사실 그 사람은 내게 '그런다고 안바껴요.'라고 말했던 사람이야.


오월의 아카시아

젬마, 나는 오늘 오월의 아카시아 꽃을 입에 머금고 이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있어. 아무래도 나는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 이런다고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야. 그러니 계속 나를 응원해주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