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태어난 딸을 위한 오이냉국
오이듬뿍 간장술술 참기름쪼륵 통깨팍팍
젬마, 나는 여름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어. 그건 바로 우리 엄마의 오이냉국이야. 내가 서울로 대학교를 진학하고 맛본 서울의 오이냉국은 정말 충격적이었어. 오이냉국이 이렇게 시큼하다니! 왜냐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오이냉국은 집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서 먹는(아! 그리고 오이도 무조건 많이 썰어 넣어야 해.) 짭조름한 오이냉국이거든. 그런 오이냉국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게 말이야. 내게는 정말 익숙한 맛인데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늘 지금 너와 같은 반응이라 나도 놀라곤 해.
우리 엄마의 고향은 안동이야. 나는 안동에서 자란 적이 없는데도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져서인지 안동의 입맛을 지니게 되었나 봐. 식사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안동 간고등어이며, 식후 한 사발씩 들이키는 안동식혜에 그리고 향긋한 쑥의 철에는 쑥버무리로 입가심을 하곤 하지. 안동식 오이냉국은 앞서 말한 그 어느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긴 하지만 내게는 단연 최고의 엄마 손맛으로 꼽는 음식이라 할 수 있어.
그건 아마 내가 여름에 태어난 것과도 연관이 있을 거야. 여름에 생일인 나는 매년 빼먹지 않고 생일 언저리엔 엄마의 집에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전화로 미리 오이냉국을 해달라고 마치 주문을 해. 그럼 엄마가 섭섭지 않게 1박 2일 분량의 오이냉국을 준비해놓으시고 식사 때마다 밥공기보다 큰 그릇에 오이냉국을 가득 넣으시곤 얼음을 동동 띄워주시지. 아삭한 식감보다는 소금 때문인지 살짝 물렁하지만 나는 그 물렁한 식감마저 좋아해. 양껏 썰어 넣으신 오이를 숟가락으로 한가득 떠올려 입안으로 쏙. 그러면 오이가 밥인지 밥이 반찬인지 모를 정도로 입안에 오이 향이 가득해져. 오물오물 씹으면 씹을수록 더 고소해지는 오이냉국의 맛. 그제야 정말 집밥을 먹고 있는 기분이 든 달까? 서울 생활하는 딸의 엄마 밥이 그립다는 전화 한 통이면 만사를 제쳐 두고 오이를 꺼내 썰으시며 “얘가 곧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하며 멀찍이 둔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울릴까 신경을 기울이시는 엄마. 그런 엄마의 마음이 듬뿍 담긴 오이냉국이기에 아마 그 맛이 더 그리운 거겠지?
올해 내 생일에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오이냉국이 먹고 싶다고 말할 거야. 그런데 이번엔 엄마한테 배워보려고. 어떻게 하면 그 맛이 나는지 말이야. 그리고 다음 해 내 생일에는 늘 생일상 차려주시던 엄마에게 엄마의 손맛을 흉내 내서 내가 오이냉국을 해볼까 해.
엄마의 오이냉국을 떠올리며젬마, 너는 어떤 엄마의 음식이 제일 기억에 남니? 너희 부모님 댁에 찾아 인사드린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그날 해주셨던 어머니의 제육볶음 그리고 밭에서 바로 따 온 쌈 채소들이 기억이 나. 그때 너의 아들 기쁨이 까지 있으니 대식구가 식사하는 기분이었지. 또, 기쁨이는 너의 어떤 음식을 가장 오래도록 기억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편지를 쓰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온다. 점점 더워지는 요즘, 오이냉국 하나로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해보는 건 어떻니? 그럼, 맛 좋은 저녁시간 보내길 바라. 또 편지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