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꺼내 신는 수면양말
은이 잘 지내고 있는지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어느 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린 은. 내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 중 가장 아꼈던 이였다. 그랬기에 이런 방식의 이별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을 동시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분노는 얼마 후 다시 연락을 해온 은을 애써 외면하게 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은 너만은 알아야 한다는 소리 없는 시위였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던 2012년 겨울, 은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곤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엔 여러 가지 색의 펜이 담긴 필통이 있었다. 어딜 가나 그림을 놓지 않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은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 하나가 더 잡혔다. 보들보들한 어두운 색의 수면양말이었다.
"겨울은 가서 고생하기 쉽다며. 발이라도 따듯하게 하고 잘 다녀와."
나에게 순례는 도전이 아니었다. 단지 내 마음을 돌볼 시간이 필요해 선택한 길이었다. 은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 지 말이다. 허울 좋은 그 어떤 말보다 따듯하고 건강하게 다녀오라는 인사만 건넸다. 그리고 은의 마음 하나하나 잘 스며든 선물이 위로가 되었다.
겨울의 순례길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알베르게를 열지 않은 마을은 수두룩했고 식사할 곳 역시 마땅치 않았다. 어렵게 숙소를 찾아가더라도 난방을 보장할 수 없는 시설이 허다했지만 별 수 없었다.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침낭 안으로 파고들며 허기진 따듯함을 채웠다. 그리고 배낭에 넣어둔 수면양말을 꺼냈다. 발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기분이 좋았다.
"은, 여긴 레온으로 향하는 메세타야..."
잠을 푹 자고 나면 어김없이 은에게 연락을 했다. 조용히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응원해주던 은에게 나의 안부를 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이 내 발을 가리켜 따듯해 보인다고 말을 걸어오면, 나는 언제나 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지쳐 있을 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도록 감사한 일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덕분에 920km에 달하는 나의 순례는 안전하게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사시사철 어느 계절과 상관없이 유난히 발이 찬 나는 종종 서랍에서 수면양말을 꺼낸다. 신고 있으면 몸 전체를 담요로 덮어준 것처럼 따듯해진다. 그리고 은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은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분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리운 감정만 가득하다. 행여 은이 부담스러워할까 이름 붙여보지 못한 나의 진한 우정은 이제 온기로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