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난 하루빨리 서른 살이 되고 싶었어."
그 말이 왜 그렇게도 낭만적으로 들렸는지 알 수 없다.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된 회사에서 인턴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책임 디자이너가 식사 중에 한 말이었다. 서른이 되면 막연했던 이십 대가 정리되고 무언가라도 되어 있을 것 같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막상 서른이 되니 별거 없었다며, 그녀는 웃고 말았다.
그러나 내겐 그런 말을 하는 책임이 꽤 멋져 보였다. 그녀를 존경한다거나 그런 류의 감정을 품은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 말속에는 반짝거리는 무언가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어 마흔이 되어가는 설익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난 그때 스물세 살이었고, 곧 스물네 살이 될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어김없이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한 살 더 먹게 되는 나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왜 이때만 되면 나이에 유독 민감해지는 걸까? 24시간으로 일정한 하루를 매일같이 살아가면서 말이다. 그들의 예민한 대화 속에서 난 홀로 설렘의 작은 등불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그 책임의 말을 오래도록 간직한 것이었다. 서른이 되길 손꼽아 기다리면서. 별거 없었다는 결과를 이미 들었는데도,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묵직한 그 느낌을 어서 성취하고 싶었다. 2보다 단단하고 4보다는 말랑한 3을.
스물아홉의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도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이왕이면 서른을 멋지게 맞이하고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스물아홉의 12월 31일 밤, 나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어느 바에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함께 여행을 온 친구 M과 그날 M의 동행이었던 D와 함께 였다. 신기하게도 D도 서른을 맞이하는 우리와 같은 89년생이었다. D의 나이를 듣고서 나는 이번에도 의미를 덧칠했다. 얼마큼 시간이 흘렀는지 채워져 있던 술잔의 바닥이 보였다. "그만 일어날까?"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바텐더는 거슬러 줄 돈이 없다며, 돈을 마저 받지 않고 대신 쿨하게 "Happy New Year!"라고 외쳤다. 자동 흥정이 가능한 연말 바이브에 웃음이 났다.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하르파에는 하루 종일 '2017'이라는 숫자가 켜져 있었다. 하르파로 옮겨가 '7'이 '8'로 바뀌는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하루 평균 5시간도 안 되는 낮의 길이를 자랑하는 아이슬란드의 극야는 짙다 못해 도시를 잠식했다. 암전 속에서 하르파의 밝게 빛나는 '2017'은 유난히 눈이 부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둠을 쫓아내듯 박자감 없이 폭죽을 쏘아 올렸다. 불꽃은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내며 밤하늘에 흩뿌려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새해를 기다리는 레이캬비크의 연말 풍경이었다.
드디어 1분 전, 오직 이 순간만 용서해줄 수 있는 폭죽의 불협화음 속에 하르파를 바라보고 섰다. 60부터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에 맞춰 나는 정박으로 숫자를 소리 내어 읽으며 흐트러짐이 없는 화음을 만들어냈다. 이탈 없이 숫자를 세어낸 음성은 2018년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멀게만 느껴지던 서른이 되었다.
자욱한 폭죽 연기 속에 소란한 환호가 새어 나왔다. 역시 이곳에서 서른을 맞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듯한 마음에 나와 친구들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서른이네. 축하해."
서른은 정말 별거 없었다. 여행하는 동안 쓰는 일기장에 2018년의 첫날의 기록을 적다가 실수로 2017년을 썼다 지우는 어색함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니 서른 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야 겨우 떠오른다. 평소처럼 회사를 다니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해보고, 연애도 했고 또 이별을 했다.
그래도 앞자리의 3이 주는 무게감이 있어 쉽지 않은 것을 쉽게, 어렵지 않은 것을 어렵게 행하는 재주를 제법 부릴 수 있는 삼십 대가 되었다. 이를 테면, 바로 1년 뒤 갭이어를 보내는 것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실행에 옮겨, 평생을 MBTI의 J로 살던 스스로를 마음이 가는 대로 살게 내버려 둔 용기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몇 해가 흘러 난 서른셋이 됐고 이번엔 서른넷이 기다리는 2021년의 끝자락에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것이겠거니 짐작하며 산다.
서른넷은 애매하다. 서른처럼 0으로 딱 떨어지는 숫자도, 서른다섯처럼 5의 배수도, 구구단에서 등장하는 그런 숫자도 아니다. 하다못해 서른셋처럼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재미도 서른넷에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4를 금기시 여기지 않는가. 하여튼 모호함 투성인 삼십 대 중반이다.
그렇지만, 난 가장 중대한 서른넷을 맞이할 예정이다. 봄이 되면 퇴사를 하고, 여름이 되기 전 13년을 꼬박 살았던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이사를 가려한다. 평생 그림쟁이로 살았던 나를 글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살 수 있도록 방향을 틀고자 다음 코스의 면허를 준비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 책임이 말하던 "실은 별거 없었다"는 "특별한 일은 특정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지 않았을까? 인생의 고대하는 일은 순리대로 먹게 되는 나이에 찾아오는 것이 아닌, 내가 한 해 한 해 살아내는 나이가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33년 동안 갈고닦은 것을 하나씩 확인해나가는 과정에서 서른넷을 맞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특정 나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서른넷이 애매한 숫자로 이뤄졌다고 툴툴댈 필요도 없다.
나의 소중했던 서른셋을 흘려보내며, 이제는 서른넷이 무사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Reykjavik, Iceland
17. 12. 31. - 18. 1. 1.
이 글을 쓰는 지금, 단골 카페에 와 있다. 글을 쓰기에 좋은 곳이라 종종 여기서 라즈베리 아이스티를 주문해놓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데, 잊고 있던 카페의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그 이름은 '서른살'. 이 글을 쓸 운명이었던 건가? 역시나 난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