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인천
아무래도 실망했다는 말이 가장 적당하겠다. 소래철교를 30년 만에 본 나의 소감이다.
반년만에 지중해에서 안동의 엄마 집으로 귀가한 그 해 겨울이었다. 웬일로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나의 어릴 적 사진첩을 넘겨보았다. 그중 사진 하나를 짚으며 엄마가 말했다.
"우리 여기 다시 가보자."
노란 필터를 씌운 것 같은 사진엔 좁다란 철길을 배경 삼아 엄마와 어린 내가 함께 찍혀 있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양 검지를 하늘로 찌르며 양 무릎을 살짝 구부려 곧 뛰어오를 듯한 기세로 흥에 겨워 있었다. 사진을 찍어준 큰 이모가 여기를 좀 보라고 했을 텐데... 엄마는 그 음성을 가볍게 무시한 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에 없는 사진 속 여행이 궁금해 나는 엄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는 소래포구의 협궤열차가 곧 사라진다는 말에 큰 이모와 셋이 보러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 이 철길이 협궤열차가 지나던 소래철교구나.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사진의 모서리를 마치 기억하고 있는 추억 인양 의식하며 만지작거렸다.
서울에서 가깝지만 먼 소래포구까지 소박한 여행을 한 우리. 아마 내가 저리도 신났던 이유는 어렸던 나의 세계에서 최고의 숙적인 동생이 아직 태어나기 전,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는 여행이기에 그랬을 거다. 오로지 엄마의 사랑이 내게로 향하던 시기.
엄마에게 더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지만, 우리의 가장 오래된 여행이겠거니 짐작했다. 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여느 아이가 그런 것처럼 누구에게나 가장 오래된 여행은 엄마와 함께 였을 테지.
그리고 언젠가 여길 다시 가보자는 것으로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그 언젠가가 바로 얼마 전, 크리스마스였다. 근데 왜 하필 이날을 선택한 것일까. 올해 크리스마스엔 매서운 강추위가 찾아왔다.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를 기록했으니 체감온도는 아마 그 수준을 웃돌았을 것이다.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만난 상인이 인천에서 제일 추운 곳이 소래라고 했다. 우리는 인천 사람이 아니니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바람이 너무 세서... 정말이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신었던 종아리를 덮는 부츠를 집에 고이 모셔놓은 것이 생각났다. 귀가할 때까지 부츠를 신고 나오지 않은 것을 종일 후회했지만, 순간 이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엄동설한을 뚫고 엄마와 소래철교를 찾았다. 제아무리 사나운 추위라도 내 머릿속을 호호 불어대면 마음만은 몽글몽글한 온기가 제법 채워지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곤 소래철교를 떠올리며 겨울날 추위를 녹여주는 군고구마 같은 정겨운 이미지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철교는 사진 속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에? 이게 뭐야!"
완전 대실망! 내가 아는 어처구니없음을 표현하는 모든 말을 소환해야 이 황당한 마음을 겨우 게워낼 수 있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빼놓고 둘이 가더니, 꼴좋다고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 큰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대로 육교로 사용하면 위험할 테니 개조한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 감성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이렇게 만들어버리다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식으로 짜 맞춰진 보도블록 사이로 철길이 가늘게 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밀대로 납작하게 밀어버린 것처럼 추억이라는 정서는 온대 간대 없이 육교의 반듯하고 건조한 인상만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타는 게 아니라 상인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던 철길이었어. 봐, 이렇게 철길의 폭이 좁잖아. 그래서 협궤열차야. 폭이 좁아서."
허무한 무드를 가르며 엄마는 30년 전 이곳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음을 주장하듯 말했다. 일제강점기의 1937년, 시흥과 인천을 잇는 소래철교가 건설되었다. 일제는 경기 동부권의 특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이 철교를 이용했고, 서민들은 포구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을 자신들의 발품을 대신해 사용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피난길로 삼아 그 위를 걸어 다녔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서민들의 애환 속에 세워진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래철교는 1994년 무렵부터 점차 협궤열차의 운행을 줄여나갔고 1995년이 되며 완전히 폐선되었다.
2018년에 지금과 같은 육교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소래철교를 2021년의 끝자락에 엄마와 함께 걸었다. 사진 속엔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야 나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란히 걷는 우리의 그림자 중 내쪽이 확연히 더 길다. 키가 큰 그림자가 키가 작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애교 섞인 말투로 웅얼거렸다.
"엄마, 나 맛있는 거 사줘."
엄만 장갑을 낀 손으로 감싸듯 내게 팔짱을 꼈다. 그러곤 30년 전의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대답했다.
"그래, 건너가면 어시장이야. 우리 영이 맛있는 거 사줄게, 엄마가."
안아 들면 폭 안기던 아이는 늙어가는 엄마와 막걸리를 걸치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잔을 부딪히면서도 잊지 않고 소래철교가 정말 실망스럽다느니, 추워 죽겠다느니 온갖 싫은 소리를 뱉어냈다. 그래 놓고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소래포구를 다시 갈 궁리를 했다. "그땐 물때를 맞춰오면 좋겠어."라고 엄마가 말하면 "그래, 이왕이면 따듯한 날에." 하며 내가 대답을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두 번째 소래포구 여행이 바닷물이 찬 포구를 보지 못해서, 너무 추운 날 골라 온 것이기에 망한 것인 양 말이다. 세 번째 여행에선 낭만 있게 그 철교를 거닐며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천
21.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