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제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돼."
민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었다.
전염병의 유행을 예측할 수 없었던 2019년의 이른 봄,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일 년간의 휴직서를 내고 갭이어의 시작을 제주도에서 열었다.
뚜벅이가 제주도를 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염려의 목소리를 냈다. 당장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면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여기에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난 겁이 정말 많다. 거대한 차체를 고작 핸들 조작 몇 번으로 움직인다는 건 내겐 상상 불가능의 영역이다. 이 나이 되도록 자전거도 못 타는데 무려 자동차라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다음으로 내가 지닌 감각을 신뢰할 수 없어서다. 사무실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닐 때마다 무릎 위 언저리를 항상 부딪힌다. 턱없이 부족한 공간감이 작용한 탓이다. 지금도 오른쪽 바깥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급한 성미는 도로 위 교통안전을 위협한다. 평소 모퉁이를 돌아야 때 한두 발자국 더 직진하는 걸 생략하는 나는 회전하는 안쪽의 무언가와 늘 부딪히고 만다. 다시 말해, 반대편 차선의 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팔을 부여잡고 "이런 내가 운전을?"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못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선택사항이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 고민할 것도 없이 두발만 의지한 채 제주도로 떠났다.
여행에 있어 기동력이 없는 이의 기본자세는 시간의 속도를 다소 느린 '안단테'(Andante)로 설정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가 걷는 눈길을 관찰한다면 그것은 변덕스러운 화가의 예상할 수 없는 붓터치로 점철된 추상화라고 말할 것이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심취해 춤추듯 걷다가, 길가에 핀 동백꽃을 두 손으로 감싸며 향기를 맡고,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들을 발견하곤 살금살금 다가가 동영상 촬영을 하고, 이내 날갯짓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을 걸고 있을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물음을 짓게 만드는 나는 보통 사람들이 걸리는 거리에 정확히 곱하기 '2'를 해야 다음 목적지까지의 소요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어쩌면 안단테도 내게는 빠른 속도일지도 모른다. 안단테와 아다지오 사이의 템포가 적절하겠다.
이렇게 여행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비효율을 자처하는 꼴이니, 제주도의 대중교통 체계를 불평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삼십 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는 오히려 정류장 주변을 세세하게 감상할 여유를 가져다준다. 가로수로 심어진 먼나무 잎이 지닌 수열의 규칙을 찾고자 관찰하다 보면 의외로 지루할 세 없이 이십 분이 훌쩍 지나있다. 불편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건 단순히 시계가 만들어낸 관념에 익숙해져서다. 빨간 초침의 속도를 예의 주시하기보다 제주의 구름이 흘러가는 속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간의 개념이지 않을까?
"버스가 자주 오지 않잖아."
"거긴 차가 없으면 못 간다던데."
"밤늦게 어떻게 다녀?"
누구랄 것도 없이 불편해 보이기만 한 나의 제주 살이를 두고 던지는 모든 질문을 무력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답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돼."
눈앞에 버스를 놓쳐서 이십 분을 더 기다려야 해도 아무렇지 않으면 그만이다. 십의 자리 2와 일의 자리 0은 그저 편의에 의한 단위일 뿐. 고작 숫자가 주는 압박감에 압도된다는 사실이 더 억울하지 않은가? 차가 없어서 당장 갈 수 없고, 시간이 늦어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도 결국엔 마음가짐이 해답을 준다. 여기선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에 오는 지하철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 그런 마음을 다지기가 더 쉽다. 안단테의 빠르기표를 마음가짐이라는 제목의 악보에 표시해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민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했다. 민은 지난 제주살이를 떠올리는 내게 어김없이 앞선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 물음 끝에 의연한 태도로 도시 밖 생활의 만족을 찾던 제주도에서의 나의 삶을 기억해냈다. 내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의 행복을 찾던 그때를.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내 답에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아닌지, 어쨌든 민은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제주
19. 3. 25. - 19.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