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센터 예약시간이 됐다.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매우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하는 상담선생님이 그곳에 계셨다.
“나방님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슨 고민이 있어 왔나요?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나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데 주저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정말 내가 믿을 수 있을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의 약점이 되지는 않을지. 이런 고민 속에 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상담센터에 있고, 공간이 주는 힘은 강력했다.
“선생님, 팀원들과 지내는 게 너무 괴로워요. 사무실 공간에 함께 있으면 숨이 턱턱 막혀요. 최근에는 이명도 생겼어요. 소화가 전혀 안 돼서 뭘 먹을 수도 없고 병원에 가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해서 상담센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몸이 이렇게 아픈데 얼마나 고생을 했나요. 어떤 상황이 나방님을 괴롭히는 걸까요?”
“저는 그냥 우리의 목표를 함께 으쌰으쌰 하며 이뤄내고 싶었어요. 이게 이렇게 힘든 것일까요? 서로가 비난하고, 시기하고, 깔아뭉개는 문화에서 저는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어요.”
타인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사람
“나방님은 타인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네요.”
“타인에 대한 민감성이요?”
“민감성이 높아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주변환경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본인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관계에 있어 자책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제 잘못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잘못인 건데,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데 비난할 수 없잖아요.”
“그냥 속으로 생각하는 건데 뭐 어때요?”
“자꾸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제 마음에 담게 되는 것 같아서요.”
“괜찮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는 게 더 괴로운 거죠. 누군가 듣는 것도 아닌데 어때요? 조금 투덜거려도 좋아요.“
그래, 내 마음이 중요하지. 그 무엇보다도 내가 소중한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심리게임의 설계자
“팀 내 상황을 심리게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너무 재밌어져요.“
“게임이요?“
“자신을 이 게임의 참가자로 생각하지 말고, 게임판을 설계한 사람의 입장으로 한 발자국 멀리서 관찰해 보는 거예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네요? 재밌는 개념이에요!“
“심리학 책 중에 실제로 <심리게임>이란 책이 있어요.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심리 게임의 설계자라면 저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그게 제일 큰 무기예요.”
“지금처럼요?”
“네, 지금 잘하고 있어요. 상대방은 자신의 행동에 나방님이 반응하지 않는 걸 무서워할 거예요.”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가만히 있는 상대를 견디지 못해 이들 중 누군가 먼저 튕겨져 나올 거예요. 그러면 그 판은 깨지게 되는 거예요.”
지금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게 최선이었다니. 불편한 것은 개선해야 하는 내게 이 상태는 너무 괴로웠지만 생각을 다르게 하기로 결심했다. 관찰자 모드로 가자.
너는 너, 나는 나
마지막으로 회사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으셨다.
“다른 팀에 3명 정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런 불평스러운 마음을 자꾸 터놓으면 그들이 괴롭지 않을까요? 제 부정적인 말에 그들이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 말을 못 하겠어요.”
“그러면 물어보세요! 힘든지 물어보면 되죠. 힘들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지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직접 물어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답을 주셨다. 이런 걸 물어도 될까 싶었지만 괜찮다고 하셨다.
상담을 마친 후,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제가 팀원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때 힘든가요?”
“별로 그런 거 없습니다. 일일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가끔 팀원들 때문에 푸념하거나 불평할 때 있잖아요. 그런 거 말하면 너무 힘들거나 그러세요?”
“아니, 힘들거나 그런 거 없는데?”
"제가 팀원들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면 받아들이기 힘드세요?"
"그냥 듣는 거죠. 어차피 너는 너, 나는 나인데. 제가 들었다고 해서 해결해 줄게 아닌데 뭐가 힘들겠어요?"
나는 고민상담을 들고 오는 친구들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해 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하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고민들에 눌려 괴로워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질문을 통해 내 기준을 상대방에게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감정인지 물어보면 된다는 이 심플한 해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하루 중 제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곳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싶었어요. 그게 참 어렵네요.”
나의 첫 상담이 이렇게 끝났다. 몇 번 만나보면 더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조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