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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방 Jun 21. 2024

3화. 당신은 촉촉한 사람이에요.

두 번째 상담일이 왔다. 관계가 썩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음을, 그리고 내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어떤 방식으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지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글쓰기와 잠, 그리고 청소를 통해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더라고요.”


“모두 정리를 하고 있네요. 우리가 잠을 잘 때 뇌가 정리를 한다는 걸 아시나요?”


나의 행동들에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매우 놀라웠다. 글쓰기, 잠자기, 청소하기 모두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니.


나라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 정리가 되어야 그것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당신은 촉촉한 사람이에요.



“나방님, 혹시 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경영학과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머! 역시! 국문학을 전공했을 것 같았어요.“


“제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셨나요? “


“그럼요. “


나의 말과 행동 어느 부분에서 나의 전공을 캐치하신 걸까. 선생님은 문학심리학을 공부하셨다고 했다.


“문학심리학이요? 재밌는 학문을 공부하셨네요. “

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러면 저랑 시 re-writing을 한 번 해보실까요? 시의 일부를 가져와서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예요.”


“선생님, 시는 천재의 영역이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어려운걸요.“


“전공자들이 오히려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새롭게 창작한다기 보다는 다시 써보는 과정이에요. 너무 부담갖지 않아도 좋아요.“


창작시라 하면 거대한 장벽이 느껴지는데, re-writing은 왠지 해볼 만한 느낌이 들었다.


“시를 콜라주해서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는 방법도 있어요. 전혀 다른 시를 모아 새로운 시를 만드는 거죠.”


“시 콜라주요?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함께 해보죠.“


얼떨결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시를 쓴다니! 두렵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면이 이렇게 촉촉한 사람인데... “


“저는 제가 드라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전혀요. 환경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것일 수 있지만, 굉장히 촉촉한 사람이에요.”


나는 오늘 촉촉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촉촉함이라는 그 단어가 나에게로 콕하고 박혀 들어왔다.




시를 쓸 생각을 하니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다. 선생님과 앞으로 함께할 시 re-writing이 기대된다. 이렇게 얼떨결에 다음 회차 상담도 예약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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