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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방 Jun 24. 2024

4화. 시인이 되어 봅시다.

우리 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지난 상담에서 시 re-writing을 해보자고 권유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유년시절 이후 처음으로 시를 지어보게 되었다. 진은영 시인의 <어울린다> 시에서 “너에게는 ~가 어울린다.”를 차용해서 나의 이야기를 시로 써보기로 했다.


많은 고민 끝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적고 시를 써 내려갔다. 상담 당일, 선생님은 나의 시를 낭독해 보라 하셨다. 시를 공개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낭독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의 앞에서 시를 낭독해 본 것 같다.




나와 나


너에게는 짙은 파랑이 어울린다.

청량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은.


너에게는 새벽이 어울린다.

동틀 무렵 쌀랑한 공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는 달리기가 어울린다.

결승선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너에게는 오색찬란 미래가 어울린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내가 켜켜이 쌓인.


나는 터널 속을 달리는 작은 자동차.

터널 끝 빛을 향해 속도를 올린다.


너에게는 고독이 잘 어울린다.

자기애 속에 갇혀 외로워진 수선화처럼.


너에게는 12월이 어울린다.

모든 것이 끝맺음을 향해가는 겨울과 같이.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 자작나무처럼.





“시의 제목은 ‘당신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를 내용에 담아 <나와 나>가 되었어요.”


“내용에 대해서도 하나씩 설명해 주실래요?”


“도입부는 타인에게 자주 듣는 나의 모습, 후반부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에요.”


“정말 흥미롭네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시에 담긴 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


타인이 바라보는 나

“예전에 친구가 저를 ‘짙은 파랑’이라고 색깔로 정의해 준 적이 있어요. 파랑은 저도 썩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요.”


“색깔정의 정말 좋네요. 왜 짙은 파랑일까요?”


"저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어 그런 것 같아요. 깊은 바다의 색깔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파랑이어서요. 그리고 행동력이나 실행력이 좋은 편이라 '너는 정말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렇군요. 계속해줄래요?”


“저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에요.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 새벽이라 표현했어요. 또 저는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제게 늘 ‘너는 꼭 잘될 거야, 너의 미래는 밝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 오색찬란한 미래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


“나방님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네요.”




내가 보는 나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표현하기 어려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작성하며 나의 근원적인 불안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음을 말씀드렸다.


“저는 늘 터널을 지나는 느낌으로 살았어요. 특히 10-20대는 터널 끝 지점을 설정하고 달려가는 생의 연속이었죠.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삶의 반복이었기에 인생이 게임처럼 ‘퀘스트 깨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의 저는 단거리 달리기 주자였죠."


“왜 터널이라 표현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서른 즈음에 제게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겼어요. 그 사고로 인해 인생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졌죠. 그 시절 저는 처음으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놀랍게도 이 사실을 인지한 이후로 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었죠. “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달리는 기분이에요. 끝없는 불안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계획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과 계속 충돌하고 있어요. “


“왜 자신을 고독하다고 표현했나요?”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만 그 안에서도 늘 고독감을 느꼈어요. 저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거든요. 과연 제가 온전히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컸고요. “


“정말 많은 고민을 했군요.”


“마지막 12월은요. 그냥 제가 좋아해서 적었어요.”


“저는 마지막이 참 좋았어요. 12월을 왜 좋아하나요?”


“한 해가 끝나가서요. 달력이란 건 사람들이 정한 규칙일 뿐이고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나 같은 겨울임이 분명한데 저는 끝이라는 말이 좋아요.”


“왜 끝이 좋아요?”


“마감하는 날이라서요. ‘나 잘 살아냈구나’라고 말할 수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12월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여름은 한참 달려야 하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요. “


선생님이 웃으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자작나무도 좋아하나요?”


“네. 저는 겨울 자작나무를 좋아해요. 울창하고 푸릇한 이파리로 이뤄진 숲도 좋지만 한해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가지만 남은 자작나무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렇게 시에 대한 나의 설명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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