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며 느꼈던 불안감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원인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것
"저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고 결론짓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문제 발생의 원인을 찾는데 그 원인을 계속 제게서 찾았어요. 원인이 내가 되어야 해결도 가능하니까요. 원인이 타인에게 있거나 제 밖에 있으면 그건 제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요. 그래서 계속 스스로 괴로워하는거 같아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뚜렷한 원인없이 일어나는 결과들도 있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섞여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어요. 다양한 이해관계가 늘 복잡하게 얽혀있거든요."
"원인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해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데요?"
“원인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거에요. 이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해보는거죠.”
”저는 줄곧 원인을 분석하려고 했나봐요. 이미 발생한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데 말이죠. 결과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나는 왜 불안할까?
“선생님, 저는 하루하루를 정말 성실히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녁에 잠이 들때면 ‘나 오늘도 잘 살았다’가 아니라 ‘피곤하다. 이렇게 살았는데 원하는 미래에 도달할 수 없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점이 너무 미래에 있어요. 현재로 와야해요.”
“그런다고 제 불안감이 사라질까요?”
“그렇구나 혹은 그럴수도 있지라고 외쳐보세요. 그리고 불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고 반드시 답을 내려야해요. 불안은 막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거에요.”
“답을 내리면 또 거기서 질문이 계속 파생되는걸요?”
“그래도 결론을 내려야해요. 결론은 어떻게든 나게 되어있어요. 단지 ‘원하는’ 결론이 없을 뿐이죠. ‘원하는’이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잠시 지워볼까요? 화이트로 지우듯이요.”
“내가 꿈꾸는 나와 지금의 나, 두 자아 사이의 괴리감에서 불안이 오는건가요?”
“맞아요. 오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하셨네요. 정확하게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지금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에요. 실재할수도 아닐수도 있는 나. 실재하는지 아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죠.”
“어렵네요.”
“잘 알고 있는걸요?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 이론이 바로 이거에요. 다음 상담때는 두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고민해보고 오면 좋겠네요. 시에 대한 제 감상평은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러고보니 선생님의 감상평을 듣지 못했다. 감상평을 눈 앞에서 듣는다니 창피하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두 자아, 그리고 간극.
다음 상담까지 생각해야할 것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