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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부스터 Oct 18. 2024

금주 다이어리 - Day 1

몇 번째 금주 다이어리인가? 이번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가?

1일차


술이라는게 참 무서운 중독 물질이다.

매일 저녁 우리는 술시를 경험한다. 불과 어제저녁에도 난 술시를 경험하고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방금 전 아이를 재우고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이 무산될 만큼 나태한 습관은 우리를 금방 지배하여 삼켜버린다.

(그 지배에서 벗어나 태블릿에 앉아 있는 지금 나를 칭찬한다.)


언제부터 술을 마셔왔는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부모님은 애주가다. 지금은 애주가가 아닌 중독자가 되어버렸지만.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부모님은 집에서 항상 음주를 즐기셨고, 모든 것을 술로 해결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서로에게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도..

술 먹고 기쁨에 만취하여 웃다 잠드는 모습, 술 먹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랑 오빠는 술 하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누구보다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성인이 되었으면 누구나 술을 마실 수 있고, 술을 마시며 친구들을 사귀고, 술을 마시며 무용담을 만들고, 추억을 만들고, 슬퍼서 술 먹고, 이별해서 술 먹고, 기분 좋아서 술 더 먹고.. 대학교 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을 들어보겠다.

수원역에서 만취하여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내려 온 날. 하늘이 아직은 기회를 준 것 같았다. 어디 하나 골절되지 않고 무사했다. 강남역에서 만취되어 태우 준다는 어떤 남자 차를 탔던 것. 시커먼 한 속내가 있었을 텐데 하늘이 또 나를 도왔다. 아무 일 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깐.

여러 번 기회를 줬음에도 불과하고 나는 정신 차리지 못했다. 사회생활도 역시나 술이었다. 술을 잘 마시면 인정받는 남초회사에서 술 잘 마시고 싹싹하고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여성 신입사원! 그땐 그게 나의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크게 한 몫했다.   

그놈의 술 때문에 직장 동료도 많이 사귀었지만 그놈의 술 때문에 취한 감정을 받아주기도 했었다. 이후에 애매한 관계를 떼어내는대도 힘들었고..

뭐 하나 도움되지 않던 술인데.. 여전히 마시고 여전히 가까이 지내고 있다.


임신이라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애주가라고 해두자. 애주가인 내가 술이 1도 생각이 안 났었으니깐.

하지만 모유수유가 끝나자마자 무섭게 마셔댔다. 그 결과 임신기간 동안 쪘던 살과 붓기를 어느 정도 뺐을때 즈음 역행했으니깐

나보다 늦게 임신한 친구들 특히 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늘 경고한다. 자칫하다가 나처럼 된다.  

왜냐하면 패턴이 똑같으니깐. 매일 아이한테 치여서 나는 온데간데없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자유로이 해결할지 못할 때 유일한 낙이 맥주가 되어버리면.. 중독물질에 중독되고, 쉽게 벗어나지 못하니깐. 맥주 한잔으로 시작해 한 캔이 두 캔이 되고 이젠 4캔 정도는 마셔야 만족하는 수준이 된다. 보통 500CC를 마시니 2,000CC는 마셔줘야 한다.

근데 돌이켜보면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내가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혹은 인간이라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자극에 더 쉽게 손을 뻗게 되어있으니깐.

엄마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하게 마시지 않는다고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변했다고 착각을 했었나?

하지만 이는 곧 또 다른 실수로 이어지고, 아이가 어려서 이런 이상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사건도 한두 개? 두세 개? 모르겠다. 여러 번 종종 있었던 거 같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늘 저녁 메뉴와 함께 어울리는 술을 같이 한다. 아이에게 이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분명한 건 술 마셨을 때 엄마아빠 모습과 안 마셨을 때 엄마아빠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훗날 나의 아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술 마시는 모습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테니깐.

지금이라도 변해야 한다. 사람은 너무나 간사하고 오랫동안 안 좋은 습관은 방심하는 사이에 손을 뻗쳐 들어온다.

최근 만성질환 진단을 받았다. 약 2년간 여기저기가 아픈데 왜 아픈 건지. 내과, 이비인후과, 치과, 대장암센터, 한의원을 다녀도 왜 그런지를 모른다.

늘 속이 불편하고, 구내염이 생기면 물도 못삼킬정도로 목구녕까지 궤양이 생겼는데도 그걸 술로 이겨낸다. 술을 마시면 감각이 무뎌지고 그럼 그 고통이 잠시나마 사라지니깐. 참 미련하게 보이지만 그 정도로 알코올 의존적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알면서도 고치기가?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2년 동안 증상을 종합해 봤을 때 마지막 퍼즐이 딱 끼워 맞춰지면서 류머티즘내과에 방문하여 “베체트병”이라는 확진을 받았다. 이 병은 당뇨나 혈압처럼 완치라는 개념은 없고, 약으로 면역을 조절하면서 더 발병하지 않도록 평생 관리하는 병이라고 한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이런 증상들이 생겼는지 모르다가 원인과 결과를 알고 나니 시원하기도 했고, 다들 괜찮아?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지만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20살부터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고 어쩌면 더 큰 질병이 아닌 이 정도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게 아닌가 싶었다.

내 병을 받아들이고 관리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내가 흔들릴 때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도 되었고, 아직은 책 읽는 습관이 들었다고 할 순 없지만.. 긍정적인 경험을 계속 조금씩이라도 쌓으려고 한다.

오늘 읽기 시작한 책 제목이 바로 ‘금주 다이어리’다 런던에서 살고 있는 클레어 폴리의 맨 정신 체험기 책을 발간하였고, 아직 초반부지만 굉장히 깊은 공감이 된다.

위로가 되는 부분은 비단 나만 이런 걸로 고민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리고 이 독성물질이 얼마나 강력한 중독성이 있는지. 한 번에 쉽게 이별하기 어렵다는 걸 나한테 위로의 글을 전하는 듯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들었다.


사실 이 책을 아침 출근길에 읽으면서 ‘다시 해보자’했지만 어김없이 술시 6시가 되니 남편한테 기대를 잔뜩 담은 톡을 날린다. “퇴근했어?”

솔직히 남편이 어떤 반응을 하냐에 수동적으로 나의 자세를 바꾸겠다는 한마디였다. 다행인 건 남편은 읽씹을 해주었고, 혼자 저녁을 해결했다. 나는 다시 결심하면 식사대용 셰이크에 물을 담았다. 이따 저녁때 입이 심심해지면 먹을 방울토마토도 큰맘 먹고 7천 원을 내고 샀다.

오늘은 현재 시간 11:05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다. 아니 성공할 것이다.


남은 1시간 정도는 오늘 나에게 다시 해보자 희망을 안겨준 금주 다이어리를 좀 더 읽다 자야겠다. 흥미가 떨어진다면 다른 차선책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도 있다. 남은 한 시간 나를 다독여주는 시간을 보내고 오늘 하루를 마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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