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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Dec 05. 2022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니?

<요한복음 21장>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제자들은 흩어졌다. 사흘이 지나 예수님은 다시 사셨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또 유대인들이 자신들까지 십자가에 매달까 봐 두려워, 문을 꽁꽁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다던 도마에게까지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런데 그 기쁨의 소식이 아직 닿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었다.



        베드로는 이때까지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부인했다. '나는 예수님을 제일 열정적으로 따른 사람이야.' 따위의 자부심 같은 건 그 짧은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버렸다. 그저 배교자, 배신자였다. 베드로는 증오해 마지않았던 가룟 유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아마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열심히 제자가 되려고 노력해 봤는데, 그냥 물고기나 잡는 것이 내 인생에 어울리나 봐.'




        이처럼 베드로는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사람들도 그를 따른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했던 익숙한 일로 돌아갔다. 근데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어 돌아온 자리였는데, 이곳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한 90미터쯤 떨어진 바닷가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니?' 



        그분은 예수님이셨다. 이 구절이 내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얘들아, 내가 너희로 낚게 하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니?'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여기서 옛 모습처럼 물고기를 잡는 너희에게 기쁨과 소망이 있니?'  물음에도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그물을 저쪽으로 던져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그들을 처음 부르시던 자리에서 있던 일과 겹쳐지는 장면이다. 그들은 그날을 기억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지 그물을 던졌고,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의 고기가 잡혔다. 그제야 요한은 깨달은 것 같다.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그리고 이야기한다. '주님이시다.'


        

        그 말에 베드로는 망설임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처절하게 배신했던 예수님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상황을 재고 따질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의 행동이 영적 상태를 말해주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삶의 이유와 의미는 정말 예수님께만 있다고 매일매일 깨지면서 깨닫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런 밑바닥의 상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로 몸을 던지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예수님께 그 큰 사랑을 받아 놓고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망치지는 않았나. 내게 익숙하고 편안하던 그 자리, 안전한 삶이 보장돼 있는 것 같은 자리로 돌아가고 있진 않았나.




         오늘의 말씀을 읽고 난 삶의 크고 작은 순간들을 돌아보며, 이 시기의 베드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을 받고도, 예수님을 세 번이 아닌 삼천, 삼만 번은 배신하며 죄로 돌아섰던 모습들을 마주했다. 또,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초청하셨던 지난 몇 년 간의 세월 동안, 하나님만 의지하기보다는 방황하는 내 모습에 집중했던 모습을 만났다. 그렇게 방황하는 나 자신을 불쌍해하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나를 보았다. 그 마음속에는 그래도 취직은 걱정 없으니까, 그래도 쓸모가 많은 기술이니까, 흐르듯 학교로 돌아와 흐르듯 살아가려 했던 심산이 있었다.



            말씀이신 주님을 생각해야 한다. 말씀을 읽으며, 내 마음에 계신 성령님께서, '주님이시다.'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들린다면 고민 없이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의미는 예수님밖에 없음을, 그 깨달음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부르신다. 베드로에게 십자가의 길을 보여주셨듯이, 이 세상 속에서의 나의 쓸모를 보여주실 것이다. 그 사랑과 그분이 주시는 확신으로, 내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두 팔 벌려 십자가의 길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두렵지만, 이것 외에는 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하고 경험해도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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