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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성 Nov 25. 2023

고딕 성당을, 순례하다-10:
샤르트르대성당

                고딕 성당의 성지: 샤르트르대성당


    샤르트르대성당은 고딕 성당의 성지라고 불린다.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긴 믿음의 역사가, 그리고 표준 고딕 건축 양식의 주춧돌을 올린 건축 역사가 아우러져 성당은 고딕 성당들 가운데 우뚝 서 있다. 4 세기 무렵 최초 순교자가 신전 지하 우물에 묻혔다. 이후 우물은 치유의 기적으로 일으킨다고 알려져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우물 자리에 성당을 세워졌다. 지금 성당이 있는 자리에 기원 전부터 아기를 낳은 신성한 처녀를 섬기는 켈트족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 내려왔다. 876년 프랑크 왕국의 챨즈 3세가 성모 마리아가 예수 탄생 때 입었다는 성의 (Santa Camisia) 를 기증 받아 모시면서 켈트족 성 처녀 신화와 어우러져 명실공히 ‘이 땅에 성모가 머무는’ 순례 성지로 떠올랐다. 

수백년 긴 세월 동안 순례자들은 추수가 끝난 밀밭 넘어 성당을 바라보며 순례했다. 

    11 세기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규모의 로마네스크 성당을 지었는데 안타깝게도 1194 년, 대화재로 샤르트르 타운 뿐 아니라 성당도 전소됐다. 사람들은 대화재를 성모의 저주로 생각하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화재 이틀 뒤 죽은 줄 알았던 신부 3명이 지하 예배소로 피신 했다가 성의를 앞세워 불현듯 나타났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기쁨의 충격에 휩싸였다. 샤르트르 시민들은 대화재가 성모의 저주가 아니고, 반대로 성모가 보다 나은 좋은 집을 지어 달라는 소망으로 해석했다. 이 기적의 힘으로 장대한 성당을 30 여년 만에 거의 완공했다. 화재로 지하 예배소만 남아있는 로마네스크 성당 터 위에 당시 전혀 새로운 양식인 높은 고딕 양식으로 성당을 짓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성당을 완공해 고딕 건축 양식의 주춧돌을 세웠다. 이후, 고딕 건축 양식은 변모했지만, 높은 고딕 양식은 고딕 건축의 표준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성당은 성당의 긴 역사 뿐 아니라 표준 고딕 양식을 제시해 고딕 성당의 성지라고 일컫는다.


 바위산처럼 솟아 있는 성당

    샤르트르대성당은 큰 성당이다.성당이 길고 (내부 길: 130 미터), 높고 (천장: 36.5 미터), 또한 폭도 넓다 (신랑 폭: 16.4 미터). 파리대성당과 길이는 엇비슷하지만 더 높고, 더 넓다. 부르주대성당과 높이는 비숫하지만, 폭은 더 넓다. 성당은 십자가 몸에 해당하는 신랑과 성가대석 뿐 아니라 양팔인 교차랑 양쪽 익부 (길이: 64 미터)도 길어서 완벽한 십자가 평면 구조를 하고 있다. 

샤르트르대성당 평면도

    

    샤르트르는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일데 프랑스 바로 바깥에 있는 중도시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면 갈수 있어 파리에서 성당을 감상하고 당일에 돌아올 수 있다. 아담한 기차역을 나오면 시내 집들이 모여 있는 나즈막한 언덕 위에 바위산처럼 우뚝 솟은 성당이 시선을 압도한다. 호텔과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 넓은 골목길을 따라 20분 남짓 올라가면 바로 성당 서쪽 파사드 정원이 나온다. 정원에 서서 성당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장엄하다! 

기차역을 나오면 바위산처럼 우뚝 솟은 성당에 시선을 빼앗긴다. 

장엄한 서쪽 파사드

    1194년 대화재 이전 12세기 중엽에 늘어나는 순례자들을 수용하려고 로마네스크 성당을 확장했다. 우선 서쪽 파사드 첨탑을 성당 앞쪽으로 옮겨 짓고, 탑 사이 서쪽 파사드를 옮기는 도중 대화재가 났다. 그래서 다행히 서쪽 파사드는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멀찍하게 물러나 서쪽 파사드 두 탑을 바라본다. 웅장한 남쪽 첨탑은 단순하고, 북쪽 첨탑은 화려하다. 높이가 105미터 넘는 남쪽 탑 어디에도 장식이 없다. 이 탑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명작 중의 명작이다. 북쪽 탑은 남쪽 탑보다 조금 더 높다. 남쪽 탑은 대화재 이후 오랫동안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가 1500 년 초엽에 와서야 완공했다. 당시 르네상스 영향을 받아 탑 머리부분을 조각과 부조로 장식해 화려한 모습를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400 여년 시간의 벽을 넘어 서로 잘 어울린다. 


서쪽 파사드 전경, 남쪽과 북쪽 탑

    서쪽 파사드는 입구층, 아치창층, 장미창으로 되어있는데, 특히 입구층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작으로 손꼽힌다. 입구층은 그리스도 강림에서 시작해 최후 심판으로 완성되는 그리스도 구원의 역사를 한 사이클로 집약해 증언했다. 왼쪽 문 위 팀파눔에는 수태고지에서 그리스도 탄생, 오른쪽 문 팀파눔에는 그리스도의 승천, 가운데 문 팀파눔에는 그리스도의 최후 심판까지 집약해 조각으로 풀어냈다. 3 개 문 기둥머리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이룬 행적으로 긴 두루마리 펼치듯 100여 개의 부조로 새겼다. 3 개 문 양쪽 문설주 따라 길게 병풍 펼치듯 그리스도 조상인 왕과 왕비들의 직립상을 세웠다. 



    서쪽 입구의 중심인 가운데 문을 감상하자. 팀파눔에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이크투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을 의미하는 물고기 문양) 한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왼팔을 들고 복음사가 (인간성을 부각하는 마태 마태오, 사자의 포효같이 장중함을 강조하는-마가  마르코, 속죄의 제물인 황소를 의미하는 누가 루카, 하늘의 독수리처럼 신성함을 증언하는 독수리-요한,)를 거느리고 최후 심판을 하고 있다. 복음사가들은 맹렬히 움직있다. 최후심판의 긴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할까? 고요하다. 표정은 엄격하고 자세는 근엄하다. 

서쪽 입구 가운데 문 최후 심판 팀파눔

    가운데 문 양쪽 문설주에는 그리스도 강림을 예시한 여왕과 왕들이 도열해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직립조각상들은 모두 길다. 키가 길고, 어깨에서 발목까지 드리운 옷이 길고, 겹겹이 늘어진 옷소매 섬세한 주름이 길어서 모두 수직선이다. 이 조각들은 마치 하늘의 선지자들이 땅에 내려와 기둥으로 변신한 것 같은 감동을 준다. 성당을 순례할 때마다 이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아코메티의 서있는 긴 여인 조각상이 떠올랐다. 지아코메티의 조각상들은 모든 걸 잃어버린 뒤 다만 존재의 칼바람과 맞부딪히는 피골상접한 여신이라면, 여기 직립상들은 하늘나라 열락이 충만한 듯 풍부하다. 이 조각상들은 ‘완벽한’ 로마네스크 조각을 알려져 있다.

서쪽 가운데 입구 문 오른쪽, 그리스도 조상인 구약의 왕과 왕비들 문설주 조각


웅장한 성당 외관

    성당 외부 모습은 웅장하다. 큰 공중 버팀벽이 성벽처럼 성당을 둘러싸고 있다. 당시 고딕 건축 양식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시도한 공중 버팀벽이라서 확신이 서질 않아 아주 튼튼하게 지었다. 

공중 버팀벽

남쪽과 북쪽 파사드는 이층 구조 인데, 윗 층은 장미창, 아랫층은 입구층이다. 이 파사드들은 아주 커서 웬만한 고딕 성당의 중심 입구인 서쪽 파사드와 규모에 버금간다. 대부분 고딕 성당 북쪽, 남쪽 파사드 입구층은 문이 하나지만, 남북 입구층에는 문이 3 개나 된다. 낮은 계단을 올라가면 3 개 파빌리온 같은 캐노피가 나오고, 캐노피 안에 3 개 문이 있다. 3 개 문은 떨어져 있지만 문을 덮고 있는 3개 캐노피는 막힘 없이 서로 개방돼 한 지붕을 아래서 자유롭게 오가며 3 개 문을 감상할 수 있다. 


    북쪽 파사드는 성모가 중심 주제다. 오른쪽 문은 구약의 선지자들, 왼쪽 문은 수태고지부터 그리스도 탄생, 그리고 중심 입구인 가운데 문 팀파눔에는 성모가 승천해 그리스도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장면을 그렸다.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는 엄숙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숨어있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은 성모는 단아한 모습이다. 

북쪽 파사드 입구 가운데 문 팀파눔

    팀파눔 아래 문 양쪽 문설주에는 믿음의 시작인 멜기세덱부터 세례요한과 베드로까지 11 명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을 증언하고 있다. 이 조각들 중 오른쪽 문설주의 세례 요한 직립상을 감상하자 (사진 12). 사막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며 기도하는 세례 요한은 깊은 주름, 긴 수염, 여윈 몸. 이미 자아가 소멸하고 그 빈 자리에 성령이 가득하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깊은 신앙심이 아니면 이렇게 조각 할 수 없다. 감동의 긴 한숨!

북쪽 파사드 입구, 가운데 문 오른쪽 문설주, 가운데가 세례 요한, 오른쪽이 베드로


세례 요한 

    

    성당 남쪽 파사드 입구 왼쪽에는 순교자의 문, 오른쪽에는 고백자의 문, 그리고 가운데 문은 최후 심판의 문이다. 가운데 문 팀파눔에는 그리스도가 번쩍 양팔을 들어 최후 심판하고 있다. 바로 아래 격자 부분에는 미카엘 대천사장이 죄의 무게를 재며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사자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천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안도감보다는 행복함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은 공포보다는 슬픔이 읽힌다. 

남쪽 파사드 입구

    문 양쪽 문설주에 12 사도들과 함께 문 가운데 문설주에는 그리스도가 손수 땅에 내려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여기 그리스도는 무서운 그리스도가 아니고, 준수하게 잘 생긴 미남이다. 여기 그리스도는 바로 위 팀파눔에서 있는 최후 심판자가 아니고 손수 이 땅에 내려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그리스도다. 불과 100 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조각 예술이 빠르게 성숙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동력은 당시 힘차게 깨어나는 기독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남쪽 파사드 입구 가운데 문 중앙 문설주 복음을 설파하는 그리스도

새로운 고딕 언어가 빗어낸 공간

    성당에 들어가 신랑에 서서 동쪽 끝을 바라보면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높고 큰 공간을 만난다. 파리대성당은 높지만 비좁고, 부르주대성당도 높지만 성당 내부 전체가 통으로 비어 때론 휑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샤르트르대성당 공간은 높고 그리고 넓다. 폭이 넓어 더 높게 느껴진다. 공간이 아주 크고 좀 어둑해서 처음 보면 압도 하지만, 익숙해지면 우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성당에 들어와 동쪽 끝을 바라보면서 만나는 공간


    신랑 중간쯤 서서 처음 높은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성당 구조를 살펴보자. 초기 고딕 양식 성당 벽은 4층 구조지만, 높은 고딕 양식을 처음 시도한 샤르트르대성당에선 트리포리움층 위에 아주 큰 채광창, 아래는 높은 아케이드층의 3 층구조다. 3층 구조지만  트리포리움층은 작은 장식층이어서, 실제로는 아케이드층과 채광창의 이층 구조이며, 이 두 층은 아주 커서 높이 솟은 수직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케이드층과 채광창 사이 트리포리움층을 띠처럼 수평으로 넣어 수직성에 안정감을 더했고, 이 안정감은 다시 수직성을 더욱 강화한다. 

    기둥에도 큰 변화가 왔다. 아케이드 기둥은 단순한 원형 기둥이 아니고, 기둥에 4 개 다발 기둥들을 부쳤다 (사진 17). 이 다발 기둥 중, 신랑으로 난 기둥은 아케이드 기둥 머리에서 양쪽 2 개씩 모두 4 개 다발기둥과 함께 다섯 개 기둥으로 솟아올라 천장 밑둥이에서 가운데 기둥은 그대로 솟아 직사각형 궁륭의 틀을 만들고, 바로 바깥쪽 두 개 기둥들은 대각선으로 직사각형 궁륭을 가로질러 교차 늑재를 만들어, 네 부분으로 나눠지는 4 분 교차 늑재 궁륭으로 완성한다. 한편, 제일 바깥 2 개 기둥들은 옆으로 뻗어 나가 채광창 틀을 만든다. 이렇게 다발 기둥들은 성당 바닥에서부터 솟아 나무가지처럼 사방으로 갈라져 교차 늑재 4 분 궁륭과 채광창을 만들어 성당 내부 구조를 하나로 묶는 유기적인 구조를 이룬다. 이 유기적인 구조가 반복되면서 성당의 골격이 된다. 이렇게 천장을 높이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성당 벽 바깥에 지은 공중 버팀벽 때문이다. 공중 버팀벽은 천장 늑재로부터 밀쳐 나오는 하중을 성당 벽 밖에 따로 공중 버팀벽으로 지어 받아냈다. 그래서 천장 하중을 지탱하던 벽은 한결 가벼워졌다. 가벼워진 벽은 무거운 물성이 없어져 그 자리에 큰 스테인드글라스 채광창과 아케이드층이 들어섰다. 그래서 성당은 장대한 건축이지만 가볍게 떠 있는 것 같은 공간을 짓고, 그 공간에 스테인드글라스 오색으로 물드는 하늘나라의 빛으로 채웠다. 

높은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성당 벽 구조 

    성당 공간은 중심 공간과 새끼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신랑과 성가대석은 예배 드리는 중심 공간이라면, 이 중심 공간을 둘러싸는 신랑과 성가대석 양쪽 측랑, 회랑은 새끼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18). 신랑의 한 겹 측랑은 성가대석 두 겹 회랑으로 이어지고, 회랑은 둥근 성가대석 끝을 둘러싸는 주보랑이 되고, 방사형 제실들이 주보랑을 향해 열려있어 공간이 된다. 해서 성당 중심 공간을 둘러싸며 측랑을 지나 회랑에 들어서면서 넓어지고, 주보랑에 들어서면 더욱 넓어져 성당 끝까지 들어가면서 점차 확대되는 구조다. 

신랑, 성가대석, 양쪽 익랑은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들이 교차랑으로 어우러져 장대한 공간이 탄생한다. 교차부에 물끄러미 서 있으면 사방에서 교차랑으로 몰려와 솟구치는 공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진 19). 가히 공간의 고딕, 고딕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은 고딕 양식은 레뇨낭과 플라부아양 양식으로 변모하지만 높은 고딕 양식은 고딕 건축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잡았다.


샤르트르대성당 공중 버팀벽과 3층 벽 구조 


    성당 공간은 중심 공간과 새끼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신랑과 성가대석은 예배 드리는 중심 공간이라면, 이 중심 공간을 둘러싸는 신랑과 성가대석 양쪽 측랑, 회랑은 새끼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신랑의 한 겹 측랑은 성가대석 두 겹 회랑으로 이어지고, 회랑은 둥근 성가대석 끝을 둘러싸는 주보랑이 되고, 방사형 제실들이 주보랑을 향해 열려있어 공간이 된다. 해서 성당 중심 공간을 둘러싸며 측랑을 지나 회랑에 들어서면서 넓어지고, 주보랑에 들어서면 더욱 넓어져 성당 끝까지 들어가면서 점차 확대되는 구조다. 


신랑 한 겹 측랑에서 성가대석 두 겹 회랑으로 두 겹 회랑은 후진 두 겹 주보랑에서 제실로 확대된다. 


    신랑, 성가대석, 양쪽 익랑은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들이 교차랑으로 어우러져 장대한 공간이 탄생한다. 교차부에 물끄러미 서 있으면 사방에서 교차랑으로 몰려와 솟구치는 공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진 19). 가히 공간의 고딕, 고딕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은 고딕 양식은 레뇨낭과 플라부아양 양식으로 변모하지만 높은 고딕 양식은 고딕 건축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잡았다.


신비감 우러나는 ‘푸른 성모’ 스테인드글라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창은 176개, 스테인드글라스창 총면적은 2,600 평방미터 나 된다. 고딕 성당 중 유일하게 오리지날 스테인드글라스를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대부분 스테인드글라스창은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할 때13 세기에 제작됐다. 이 시기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기술의 초기 단계여서 만져보면 스테인드글라스가 두툼하다. 이 두꺼운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지어 성당 내부에는 어둠이 감돈다.

    다행히 12 세기에 제작된 서쪽 파사드 3개 스테인드글라스와 푸른 성모 ‘푸른 성모 (Belle Verriere)’ 스테인드글라스가 대화재에 불타지 않고 남아 보존돼있다. 이 창들 중 널리 알려진 푸른 성모 창을 감상하자. 이 창은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위엄 있는 성모의 모습을 그렸다. 하얀 성령의 비둘기 축복 받으며, 천국과 땅을 의미하는 v 자를 그리고 있는 아기 예수.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성령의 비둘기 축복 받으며 고개를 약간 숙인 자애로운 성모와 눈빛과 크게 뜬 그리스도는 인간을 응시하며 구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진한 붉은 색 배경에 성모와 아기 예수의 자태가 연푸른 색으로 밝게 강조해 하늘 나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푸른 성모 장미창

장대한 북쪽, 남쪽 파사드 장미창 

     이전에도 장미창은 있었지만, 남북 파사드에 직경이 10 미터가 넘는 큰 장미창은 샤르트르대성당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장미창은 파리대성당의 장미창 제작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장미창의 기본 모델이 됐다. 북쪽 장미창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때까지의 역사를 증언한다.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첫째 원형에는 성령의 비둘기와 천사들, 두번째 원형은 성모 마리아의 조상들, 다이아몬드 문양에는 프랑스 왕실을 의미하는 백합 문양이, 마지막 원형은 그리스도 강림을 예시한 선지자들을 새겼다. 안쪽 원형과 바깥 반원형 사이에 넣은 다이아몬드 디자인은 원형 구도에 파격의 리듬을 넣어 사각형 구도가 창의 중심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로 집중되게 했다. 


북쪽 파사드 장미창

    남쪽 장미창은 영원한 그리스도를 축복하고 있다. 창의 중심 보좌에 앉아있는 그리스도를 첫째 원형에는 천사들이 감싸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복음사가, 제일 바깥 원형에는 하프를 연주하고 하늘나라 노래를 부르는 24명의 장로가 있다. 장미창 아래 뾰족창들은 네 명의 중요한 선지자들, 이사야, 다니엘, 에스겔, 예레미야가 각각 마태, 요한, 마가, 누가를 목말 태우고 있다. 이는 구약의 예시가 그리스도 강림으로 이루어졌음을 증언한다. 

남쪽 파사드 장미창 

성모의 성의, 카미시아

             성당은 그리스도가 탄생 할 때 성모가 입었다고 알려진 성의 – (Sancta Camisia) 카미시아를 천년 넘게 보존하고 있다. 성의 대부분은 프랑스 대혁명때 손실되고 지금은 스카프만 남아있는데, 스카프의 긴 부분은 북쪽 성가대석 회랑에 있는 성모 성심(Immaculate Heart of Mary) 예배실에 전시되어 있고, 짧은 부분은 지하 예배실에 보관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모시 대마 갈색 섬유질이다.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분석에 따르면 이 스카프 나이는 2,000 년 전쯤 만들어진 걸로 추정됐다. 그 스카프를 성모께서 예수가 탄생할 때 둘렀을까? 이 질문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고 신의 영역이 아닐까?


                        그리스도가 탄생 할 때 성모가 입었다고 알려진 성의 – (Sancta Camisia)


하늘나라로 가는 길, 미로 

    신랑에는 직경 12 미터의 여섯 겹으로 겹친 아주 큰 원형 미로가 바닥에 깔려 있다. 이 미로는 272 개 석편으로 되어있는데, 272일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삶으로 태어나기 전 땅에서의 임신 기간 날짜을 의미한다. 순례자들은 무릎으로 걸어가, 미로 중심에서 하늘나라에 다다른다. 원형 중심에 도착할 때 까지 거리는 261.5 미터로 하늘나라는 가깝지 않다. 성당은 매달 의자들을 치우고 미로를 순례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신랑 가운데 있는 미로 


순교자 지하 우물 

    성당 지하 예배소는 아주 크다. 대화재로 로마네스크성당은 전소됐지만, 지하 예배소는 온전히 남아 예배소 틀 위에 고딕 성당을 지었다. 지하 예배소에는 34 미터의 깊은 우물이 있다. 4 세기 무렵 최초 순교자들이 이 우물에 던져진 후, 우물물은 치료 효능을 얻어 ‘위대한 성자의 우물( Puits des Saint Forts)’ 로 십수 세기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한다. 우물을 내려다 보면 깊은 어둠이다. 


허리 굽혀 우물 들여다 보며 외마디 소리 지른다

우물이 통 악기처럼 울린다.

울림이 울림을 불러 우물에는 메아리가 가득하다. 

내가 떨어진다

암흑을 부수면서 떨어진다 

암흑의 파편이 흩어진다 

내 사지가 뿔뿔이 흩어지고

노려보는 증오 눈빛이 풀어지고 

어딘가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들려온다 

오뉴월 푸득푸득 칠면조 나래의 긴 침묵

떨어진다 

떨어질수록 더 빠르게 내가 지워진다

떨어질수록 내 영혼이 지워진다. 

밑 빠진 암흑

바닥이 없다  

비로소 깨어나는 빛

두 눈 감아도 어둡지 않은 

내 몸과 마음 투명하게 밝아오는 은총

당신이 내리시는 축복

그, 가없는……


                4 세기 무렵 최초 순교자들이 묻힌 ‘위대한 성자의 우물( Puits des Saint Forts)’ 


다시, 또 다시 성당을 순례하다 

    십여 년 동안 성당을 4번 정도 순례했다. 처음에는 반나절, 다음 해는 하루 종일, 다시 2 년 뒤에는 삼일 밤 묵으며 순례, 마지막은 코비드 팬데믹 직전 파리 가는 길에 우연히 성당을 들렀다. 내가 경험한 성당의 첫 인상은 외관은 우악스럽고, 성당 내부는 어둡고, 분위기는 괴기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파이프 오르간 음악 소리. 인간은 신 앞에 다만 왜소할 뿐인가? …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낯설었다. 하지만, 무엇에 이끌렸을까? ‘거기 있을까?’ 다시 가보고 싶었다. 두번째 순례 때는 성당이 가까이 다가왔다. 성당은 장엄했고, 내부는 연한 어둠이 깃든 고요함이 있었고, 스테인글라스로 흘러들어오는 빛은 오묘했다. 다시 2 년 뒤에는 며칠 묵으면서 잠시 사는 마음으로 성당을 감상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찬찬히 감상하고, 첨탑 끝까지 올라가고, 조각들도 자세히 들어다보고, 미사에도 참석하고, 때론 의자에 물끄러미 앉아 있다 졸기도 했다. 구도시 가로수 길가 벤치에 앉아 그로샹도, 신컵도 먹었고, 하릴없이 거닐었다. 길과 길 사이, 집과 집 사이 문득 돌아보면 거기엔 언제나 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삶의 배경이었다. 마지막은 샤르르트 근처를 지나다 저녁 무렵 성당에 들렸다. 성당에 들어서니 마침 청소년 합창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가족, 친척, 동네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품는 공간이 따뜻했다. 시골길을 떠돌던 피곤이 몰려 가벼운 졸음! 상쾌했다. 건축은 사람들이 있어야 숨쉰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도 사람의 숨결이 없으면 차가운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경험했다. 

       십수 년 동안 성당을 순례하는 동안 800 여년 만에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이루어져 천년 켜켜이 누적된 시간의 때를 걷어내고, 성당 내부도 고증에 따라 복원해 최근에서야 보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오리지날 고증의 문제로 복원 사업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땅에 성모께서 머무시는 집’은 13세기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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