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신과의사의 임상일지 - 제1 화
한국에서 의과대학 졸업, 미국으로 건너와 정신약리학 박사, 정신과 전문의와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의과대학 교수로 30여 년 재직했다. 마침, 미국 동남부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정신과 의사가 없어서, 교수생활을 접고, 작년 말에 동남부 거점도시 교외의 한인타운과 전통적인 백인 타운 경계선쯤에 위치한 정신건강센터에 조인해서, 백인,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인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교수로 일할 땐 한국환자를 진료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건강센터에서 한인환자들을 진료하는 건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골 의사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 한인환자를 진료하면서 미국 속에서 뿌리내린 한인 커뮤니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경험한 한인 환자들의 이야기를 땀땀이 바느질하듯 엮어나갈 생각입니다. 여기 임상일지는 환자들의 집적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몸소 진료한 케이스를 기초로 나름대로 각색한 가상 환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치매 진단받은 지 3 년 가량되는 80 세 중반 어머님은 얼마 전부터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모으는 편집증이 생겼다. 화장지 편집증을 처음 알게 된 건 치매데이케어센터에서였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에도 꽤 참여했는데, 얼마 전부터 구석에서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다 사라지고 해서 찾아보니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두루마리 휴지를 마구 풀어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말리는 것도 잠시, 틈 만 있으면 다시 가 화장지를 안주머니, 속 옷 사이, 허리춤에도 구겨 넣고 있었다. 막무가내. 할 수 없이 하루에 화장지 두 롤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집에서도 화장실에 가 휴지를 풀어헤친다. 초노의 아들이 서툰 한국어로 “엄마 왜 그래, 그렇지 좀 마”, 남편도 “대체 왜 그래”, 보다 못해 윽박 지러도 효과가 없다. 속수무책. 되도록이면 화장지를 눈에 안 띄게,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도와주고, 이민 오시기 전 유행했던 이미자 노래도 들려드리고, 어린 자녀 사진도 펼쳐 놓고 등등, 50년 전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조언했다.
내가 한국에서 성장했던 시절에는 대부분 재래식 변소를 사용했다. 언제나 휴지가 부족했다. 허드레 종이를 모아두고 사용했다. 시골에선 나뭇잎도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변소 휴지가 아니고, 사는 게 문제였다. 어머님은 50여 년 전 간호사로 미국에 이민, 낯선 땅에 영어를 배우며 억척같이 일해 남편과 자녀들 이민시키고, 사촌까지도 미국에 불러들였다. 십수 년 전 가족이 함께 자영업 운영하다, 자식에게 물러주었지만, “놀면 뭐 해” 몇 년 전까지 일하다 5 년 전에서야 정말 은퇴했다. 쉬는 것도 잠시, 3 년 전에 치매가 찾아왔다.
20여 년 전, 한국계 스탠드 업 코미디언 마거릿 조 (Margaret Cho)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아시아계 처음으로 ABC TV 한국 이민가정을 그린 시트콤에서 마거릿 조 엄마는 언제나 “종이 아껴, 종이 아껴 (save the papers), 아까운 포장지” 잔소리하며 등장했다. 우리도 박장대소 “그럼, 꼭 우리 할머니 하고 같네” 하며 재밌게 본 기억이 생생하다.
치매가 심해지면서 기억도 사라지고, 행, 불행을 짊어지고 열심히 살아왔던 삶이 지워지고, 영어가, 미국이 지워지고, 감성도, 생각도 사라진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아끼는 편집증, 거의 본능적으로 꽉 움켜쥐는 화장실 휴지 두루마리 챙기기. 저물어가는 삶의 유일한 보람인 듯, 저무는 삶의 표현인 듯,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무언의 팬터마임. 화장지 모으는 편집증은 경건하다. 얼마 후엔 편집증 마저 지워 지리니. “어머님, 두루마리 화장지 많이 모으세요!”
이 글을 쓴 뒤, 구글과 유튜브 찾아보니 한국에선 치매환자들이 화장지나 휴지를 모으고 감추는 강박증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은 선진국이지만 얼마 전 만해도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휴지 모음 강박증에서 아직도 가난의 무늬가 새겨진 사회적 DNA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