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신과의사의 임상일지 - 제2 화
한국에서 의과대학 졸업, 미국으로 건너와 정신약리학 박사, 정신과 전문의와 전공의를 마친 뒤, 의과대학 교수로 30여 년 재직했다. 마침, 미국 동남부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정신과 의사가 없어서, 교수생활을 접고, 작년 말에 동남부 거점도시 교외의 한인타운과 전통적인 백인 타운 경계선쯤에 위치한 정신건강센터에 조인해서, 백인,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인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교수로 일할 땐 한국환자를 진료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건강센터에서 한인환자들을 진료하는 건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골 의사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 한인환자를 진료하면서 미국 속에서 뿌리내린 한인 커뮤니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경험한 한인 환자들의 이야기를 땀땀이 바느질하듯 엮어 나갈 생각입니다. 여기 임상일지는 환자들의 집적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몸소 진료한 케이스를 기초로 나름대로 각색한 가상 환자들의 이야기입니다.
60세 중반, 젊은 할머니, 중서부지역에서 세탁업 하다 4년 전쯤 은퇴해 남편과 함께 한인타운으로 이사 와서 몇 년 뒤 다시 우울증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무기력하게 우울해지면서, 삶의 의욕과 흥미가 감소되고, 식욕이 감퇴되니 몸무게가 줄고, 삶을 내려놓은 듯 에너지가 떨어졌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심정으로 클리닉을 찾아왔다. 8년 전에도 우울증 경험해 치료받고 회복됐는데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 당시 병력과 복용했던 항우울제 참조해 처방하고, 우울증 예후, 항우울제 치료가 시간 걸리고, 확실히 우울증이 호전되려면 몇 개 월 정도 소요 될 수 있다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미리 환자와 남편에게 했다. 다행히 2 달가량 지나면서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더니, 4 개월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호전되면서 환자는 불평을 시작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안 낮은 거 같아요. 약을 왜 잘 안 들어요?” 환자는 부쩍 불평이 심해졌다. 선생님, 우울증은 왜 생겨요? 더 심해지는 거 아니에요, 식욕도 안 돌아오고, 세상에 재미있는 것도 없고…” “ 매일 짜증만 나고…”, 점차 우울증이 회복되는 증거다. “약 먹으면 어지럽고, 돌아버릴 것 같아요, 약이 듣는 거 맞아요? “… “한 달 전 보다 나아졌어요, 그 게 나아지고 있는 증거예요. 점차 회복될 겁니다.” 짜증에 짜증, 남편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진료를 마치고, 이층 창가에서 파킹장을 내려다본다. 환자 걸음이 빠르게 재촉하는 종종걸음이다. 회복이 되고 있구나. 심하게 우울증 겪을 때는 무기력하고 삶의 맥이 풀어져 있지만, 회복될 때는 무기력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감정 기복이 심하고, 급한 환자 성격도 드라마틱하게 나타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 나오니 물에 빠졌을 때는 잊어버리고, 보따리 내놓으라’는 거 같다. 그렇지, 낯선 땅에 이민 와 수십 년 동안 수만 가지 옷가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살림하고, 집 장만하고, 자식 교육 시키고, 재산과 모으면서, 삶의 보따리를 이고 지고 달려왔는데, 웬 우울증? 우울증 강바닥에 가라앉았다 물 밖에 나오니, 보따리는 어디 갔지? 아무렴 보따리 챙겨야지 … 가난했던 한국 사회에서 성장해 태평양 건너와 가난을 딛고 일어나 열심히 살아온 강한 삶의 뒷모습이 엿보인다.
한 달 만에 환자가 왔다. “좋아졌어요, 잠도 자고, 기분도 좋아지고, 식욕도 돌아오고, 교회도 가고… 별로 우울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됐네요. 고생했습니다. “다 선생님 덕이지요.” 접수창구로 배웅한다. 나가다, 문득, 문턱에 서서 “근데, 선생님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되나요.” 아마도 이년 이상, 아직 거기까지 안 갔어요. 다음에 상의하지, SO FAR SO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