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며칠만 있으면 11살에서 12살의 나이로 갈아탈 예정이었던 나는 이제 막 시작된 겨울방학의 여유를 누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빠 커피 한 잔 타줄래?" 하는 아버지의 요청에 하던 종이 인형 놀이를 멈추고 멀뚱 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냥 봐서는 방 세 칸, 6인용 식탁이 자리 잡고 있는 주방, 욕조와 양변기가 있는 욕실 겸 화장실, 서너 명 넉넉히 앉을 수 있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까지. 부족함 없는 여느 가정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버지 윗대의 어른들이 일구어 놓은 재산을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야금야금 다 까먹고 나머지 남은 재산이 살고 있던 양옥의 2층 규모 주택이었다.(먼 훗날 그 집 마저 날렸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커피 요청이 감정을 몰입해 역할에 충실하던 내 인형놀이의 흐름을 깼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정해진 일을 하는 것도 없이 집과 다방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버지도 자식들의 방학이 꽤나 부담스러우셨으리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버지는 약간의 물이 남아있는 작은 주전자 주둥이로 물을 모두 따라내 버리고 호리병 모양의 예쁘장한 커피잔에 물을 계량해 주전자에 부어 가스레인지에 올려 데우셨다. 커피 알갱이가 담긴 사각 유리병, 전지분유 포장 같은 프림, 고춧가루가 눌어붙은 얼룩진 설탕통, 그리고 꽃무늬 한쪽이 빠져 닳아진 커피 숟가락까지 꺼내시고는 커피 설탕 프림 비율을 알려주셨다.
"2 : 2 : 3"
내가 처음 배운 커피 레시피는 2 : 2 : 3이었다.
팔팔 끓어오른 물을 붓고 세 가지 재료가 녹아 배합되도록 무늬 빠진 숟가락으로 젓다가 잘 됐는지 간? 본다고 '호록!' 한 스푼 먹었는데 "오! 괜찮은데?"하고 아버지께 건네 드리고 이내 다시 하던 인형놀이에 몰두했다.
그 후로도 가끔 아버지는 커피를 부탁하셨고 나 또한 한두 스푼씩 떠먹는 재미에 기꺼이 타 드렸다. 한 번은 익숙한 나머지 설탕을 넣는다는 것이 나란히 있던 맛소금을 넣어 타드리는 바람에 한 입 드시고는 입에서 분수를 뿜어내는 일도 있었다. 어쩐지 눌은 고춧가루도 안 보이고 하얀 가루가 깨끗하더니만, 하필이면 그날은 간도 안 보고 그냥 드려버렸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캔커피를 매일 마셨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니 탕비실을 부서 막내의 전유물인양 내가 입사하자 선배는 과장님, 대리님, 게다가 본인의 비율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며 커피 과제를 나에게 토스했다. 어느 날 과장님의 "이제 믹스커피 타서 마시자."는 선언으로 커피 설탕 프림의 비율은 사라졌고 각자 타먹는 분위기로 서서히 전환되어 갔다.
작년에 남편과 나는 그때의 대리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손녀딸까지 보신 예순 중반의 대리님은 여전히 믹스커피를 좋아하셨고 "그때 j가 타주던 커피 생각난다."하고 웃으셨다.
"아침에 카페 가서 책 볼 거예요? 내일 출근이니까 커피는 적당히 마셔요."
연휴 마지막 날, 출근하는 남편은 나에게 당부한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휴일에 많이 마시고는 가끔 저녁에 잠 못 드는 나를 두고 마시되 '적당히'를 부탁한다.
출근해서 컴퓨터 켜고 업무 준비되면 탕비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내리다가 다른 동료가 들어오면 "한 잔 내려줄까요?"하고 물어본다. 끊임없는 대면상담, 전화상담 중간중간에 한 모금씩 마시는 커피는 숨 고르기를 도와준다.
책을 읽으려고 할 때면 테이블 위에 책과 커피를 함께 올려둔다. 책 읽으면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에 들어가노라면 마치 푹신한 담요를 뒤집어쓰고 고구마를 까먹는 느낌이다.
기분이 좋아서 우울해서 무던해서...... 내 옆에 커피 한 잔 있으면 마음의 단단한 무기를 가진 것처럼 든든해진다. 외롭지 않다.
커피는 나에게 이렇게 자리하고 있다.